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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의 영역/독서

오버 더 호라이즌 / 이영도 저 / 황금가지

1.

저는 고등학교 시절에 공통수학을 몇 십번이나 읽었는지 모릅니다.

경시반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이미 중학교 시절 수2까지 진도를 나갔음에도 불구하고요.

왜냐면 새로운 내용을 공부하다가 이해가 안 될 때 기초가 부족함을 탓하는건 고질병이거든요.

 

독서에 있어서도 적용되는 내용입니다. 심지어 더 심하기까지 합니다.

앞 부분에 기억나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뒷내용을 읽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이영도 작가의 신간인 '오버 더 초이스'를 사기 전에 이걸 무조건 다시 읽어야 합니다.

 

2.

몇 년 전 생일 선물로 받은 이 책은(마침 이 선물을 준 사람과 어제 저녁을 같이 먹었죠.)

가지각색의 종족이 섞여사는 제국 변두리 도시의 보안관 조수인 티르 스트라이크가 겪는 여러 가지 사건과 모험을 그린 3개의 중편 '오버 더 호라이즌', '오버 더 네뷸라', '오버 더 미스트'와 드래곤 라자에서 등장한 핸드레이크와 솔로처가 실험실에서 벌이는 소동을 그린 3개의 단편 '골렘', '키메라', '행복의 근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매번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인 세계관을 보여주는 이영도 작가답게

오버 더 호라이즌 시리즈는 인간 중심 사회에 이종족이 불순물처럼 섞여있는게 아닌, 다른 종족을 귀가 좀 밝거나 상처가 좀 빨리 낫는 이웃 정도로 생각되는 제국이라는 나라, 그리고 그 제국 변두리의 법과 규율보다는 인정이 더 통용되는 소도시라는 이전에 보지 못한 배경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독자가 직접 경험해볼 여지가 있는 후자를 통해서 전자에 현실감을 부여하는 기법이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 역시 이러한 배경의 특징을 잘 살리고 있고요.

 

3.

오버 더 호라이즌 시리즈는 이영도 작가의 성향과 한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영도 작가는 영웅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세계는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서 굴러간다는 것을 매 작품마다 주장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그 평범한 사람들을 마지막에 영웅으로 만들고야 맙니다.

이 책에 수록된 세 작품에서도 모두 문제를 해결한 것은 티르의 '영웅적인' 행동입니다.

 

오히려 이영도 작품들은 영웅이라는 것은 시대와 상황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 제 영웅관을 뒷받침하게 됩니다. 세상이 변곡점에 도달할 때, 그 변화에 중심이 선 사람이 영웅이 되는 것이죠.

예를 들면 출세를 꿈구는 가난한 몰락 귀족의 아들은 어느 시대에도 존재하는 인물상이지만

프랑스 혁명이라는 시대적 상황과 전 유럽과도 싸워볼만한 프랑스의 국력이 합쳐지면서 그를 한 시대를 풍미한 황제로 만들었습니다.

 

결국 영웅과 평범한 사람이라는 이분론에 입각한 접근으로는 한계에 봉착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4.

아무튼 다 읽었으니 오버 더 초이스도 사야겠네요.

요즘 자꾸 주머니가 느슨해지고 있는거 같아서 신경은 쓰이는데 읽고 싶은 책을 안 살 수는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