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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이야기

대전에서 데이트(2022.08.12)

 어제는 금요일이었지만 여자 친구로부터 요청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중도금 대출을 가야 하는데 같이 가 줄 수 있냐고요. 흔쾌히 승낙하고 연차를 사용하였고, 오전에 모든 수속을 마친 다음부터는 연인들의 시간이었습니다. 이번에 데이트 코스는 대전이었습니다.

 

 대전은 저와 여자 친구에게 모두 의미 있는 곳입니다. 여자 친구에게 대전은 나서 자란 도시이고, 저는 6년 반의 시간을 보낸 고향만큼이나 애착이 가는 도시입니다. 인생 여정을 반추해보면 갑천을 사이에 두고 한 명은 KAIST에서, 한 명은 고등학교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는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언제 한 번 같이 대전을 가면 재미있을 거라는 말이 몇 번 나왔고, 이번 기회에 여자 친구가 운전대를 잡고 경부고속도로로 내달렸습니다.

 시작은 제가 KAIST를 안내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일단 점심시간이어서 KAIST 졸업생이라면 잊을 수 없는 식당인 중국집 왕비성으로 향했습니다. 작년에 회사에 상무 님을 모시고 내려갔을 때도 여기서 식사를 하였는데 그분이 학교를 다닐 때도 영업하고 있었다고 하는 대단한 곳입니다. 여전히 장사가 잘 되는지 제가 학생일 때보다 내부 인테리어가 고급스럽게 바뀌었더라고요. 여기서 가장 호평받는 메뉴인 야끼짬뽕을 시켰습니다. 여자 친구는 먹어본 적 없는 메뉴이고, 신기한 맛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마파두부를 먹었습니다. 서로 조금씩 덜어서 나누어 주었죠.

 

 근처 메가커피에서 커피를 산 다음에 본격적으로 KAIST 투어가 시작되었습니다. 쪽문을 통해서 들어가 엔들리스 로드를 따로 올라가면서 이 길의 이름과 KAIST 기숙사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고, 거기서 태을관으로 꺾어 들어갔습니다. 원래는 태을관 2층 식당에서 잠시 쉬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영업을 하지 않아서 제가 졸업하고 나간 후에 새로 생긴 롯데리아로 가서 잠시 앉아있었습니다.

 

 그리고 체육관 길을 따라서 내려갔습니다. 요 근래 계속 흐리고 비가 많이 내려서 여기저기서 수재 피해가 나왔는데 이 날은 정말로 하늘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여자 친구의 반 아이가 KAIST 캠프에 와서 여기서 찍은 사진을 전에 보냈다고 해서 일부러 여기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나저나 예전에는 KAIST생을 상징하는 것 중 하나가 자전거였는데 내려가면서 자전거보다 킥 보드를 타고 움직이는 학생을 더 많이 만났습니다.

 

 청춘을 보낸 자연과학동 건물, 왠지 모르게 철봉과 평행봉이 설치되어 있더군요. 내려가는 길에 바이오시스템 과 옆에 서브웨이가 들어왔고, 자연과학동에 카페가 들어와 있는 것을 세상이 참 좋아졌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밑에 서남표 신전을 지나서 오리연못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나와서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진짜 눈부시게 빛나는 여름날이라는 단어를 시각화한 것 같은 사진이었습니다. 여자 친구는 오리가 엄청 귀엽다고 하더군요. 저는 저 오리들이 기분이 나쁘면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시비를 거는 흉폭한 존재라는 것을 알길래 조금 떨떠름했습니다.

 

 서측 식당 앞에서 다시 한번 찰각!! 이런 사진이 마음에 든다고 하네요. 이후에 매점에서 음료수를 하나 사고서 KAIST를 떠났습니다. 매점 가격이 얼마나 싼 지 보여주려고 일부러 들르자고 하였죠. 여기서부터는 이제 여자 친구의 차례였습니다. 차를 몰고서 갑천 반대편 공용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에 예전에 살던 아파트와 다니던 고등학교를 알려주었고, 그 시절 통학로를 따라서 함께 걸었습니다. 그 시절 자주 다니던 서점에 가서 참고서들도 구경을 했었죠. 저희 세대의 바이블이었던 정석과 개념원리는 이미 거의 찾는 사람이 없어졌고 본 적도 없는 참고서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더군요. 그 다음에 자주 가던 독서실과 문구점에도 들렀습니다. 원래는 마지막으로 성심당에서 빵을 사서 올라가려고 했는데 가기 전에 지금도 대전에 계시는 여자 친구 부모님께 인사드리려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러더니 저녁을 먹자고 하시면서 바로 나오시더군요. 제가 전에 고기보다는 해물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이번에는 복어를 사주시더군요.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올라오는 길에 다시 한 번 찰칵, 아름다운 노을이 이번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해주었습니다. 즐거운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