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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이야기/기행문

여름 휴가는 대관령에서(2) - 피서

1.

숙소는 대관령에 있는 '구름 위의 테라스'였습니다.

근처에 1인실을 구하지 못해서 2인실 중에서 적당한 가격의 숙소로 구했습니다.

제가 차가 없기에, 양떼 목장에서 숙소까지의 픽업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도 플러스 요소였습니다.

 

셀리나 방을 받았는데 침대는 성인 둘이 쓰기에는 약간 작고, 혼자 쓰기에는 꽤 넉넉한 크기였습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옷을 벗어서 의자에 펴서 말리고 바로 샤워실로 들어갔습니다.

별 생각없이 찬물을 뒤집에 썼는데 오들오들 떨릴 정도로 추웠고(!) 매우 기뻤습니다.

온수 샤워를 삶의 낙으로 삼는 저지만 이번 여름에는 도저히 온수 샤워를 할 날씨가 아니었거든요.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 다음에 짐을 정리하고 밖을 내다보니

돌아오는 길에 떨어지던 물방울이 어느새 거침없이 쏟아지는 소나기로 바뀌었습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서늘한 바람은 뎁혀진 몸을 식혀주고 있었고 싱그러운 풀 냄새도 실려있었습니다.

 

오후에도 나름 일정을 세워둔 것이 있었지만 전부 취소하였습니다.

애초에 관광보다는 휴식에 방점을 찍은 휴가 계획이었고,

이런 날씨에 무리해서 돌아다니는 것보다 쾌적한 방에서 느긋하게 보내는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핸드폰을 충전시키면서 이리저리 TV를 돌려보기도 하고,

(사실 너무 오랫동안 TV를 보지 않다보니 뭐가 재미있는지 모르기도 합니다.)

더위에 지쳐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푹신한 이불의 감촉을 즐기며 뒹굴거리다가

소파에 앉아서 가장 편안한 자세를 잡고서 가지고 온 '해저 2만리'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5시가 되자 OGN에서 진에어와 아프리카의 LOL 경기가 시작되었고

진에어를 열심히 응원했지만 어딘가 모자라는 경기력으로 압도적인 패배를 기록하였습니다.

경기 후 창 밖을 내다보자 어느새 소나기가 내린 사실을 부정하듯이 맑은 하늘이 펼쳐져있었습니다.

 

저녁을 먹으러 시내까지 걸어서 40분 정도 걸린다고 하기에 택시 대신 도보로 이동하였습니다.

날씨가 좋아서 느긋하게 산보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이렇게 돌아다니다가 멋있어 보이는 카페가 있으면 들어가서 한 잔을 즐기고,

처음보는 음식이 있으면 한 번 먹어보고, 이런게 혼자서 즐기는 관광의 묘미죠.

 

일부러 경로를 돌아가서 평창 올림픽 스타디엄 쪽으로 한 번 가보았습니다.

나름 흔적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으로 갔는데 이미 철거가 많이 진행되어 있더군요.

강원도에 저 경기장을 활용할 스포츠 팀이 없고, 애시당초 설계부터 추후 사용을 염두에 두지 않은지라 어쩔 수 없는 문제이지요.

 

저녁은 평창의 명물이라고 주장하는 오삼불고기로 먹었습니다.

다행히 1인분도 팔고 있어서 부담없이 주문하였습니다.

그리고 처음보는 술이 있기에 한 번 주문해보았습니다.

익숙한 외국 맥주를 마시는 것도 있지만 관광지에서는 이런 무모한 선택도 하나의 즐거움이죠.

약간 한약 냄새가 나는 것 같지만 저는 원래 그 냄새에 거부감이 없는 편이었고,

양념된 오삼불고기에는 향이 좀 강한 술이 같이 마시기에 어울리기도 하고요.

 

다만 빈말로도 벌컥벌컥 마실 술은 아닌지라 식사가 끝난 후에도 반 병 정도 남아서

근처 가계에서 매운 황태를 한 팩 사서 같이 숙소로 들고 갔습니다.

돌아갈 때는 아무리 저라도 체력 고갈을 느끼고 있어서 택시의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숙소로 돌아와서 다시 한 번 온수 샤워를 한 다음에

적당히 TV 프로를 틀어놓고 그 소리를 배경 음악 삼아서 독서 삼매경에 들어갔습니다.

반쯤 남은 술은 느긋하게 향을 즐기면서 마시고, 입이 심심하면 황태를 씹으면서요.

 

그렇게 가지고 온 책을 다 읽으니 자정을 넘겼고

방치해두었던 핸드폰을 켜서 게임 내 재화를 소모해 준 다음에

에어컨을 틀지도 않으면서 이불을 덮고 자는 사치스러운 숙면에 들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