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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의 영역/독서

키다리 아저씨 / 진 웹스터 저 / 더클래식

1.

초등학생 시절 처음 읽은 이래로

제가 좋아하는 소설을 꼽으라면 반드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작품입니다.

 

여러 차례 이사를 다닌 집안 사정상 가지고 있던 서적류가 대부분 분실되었고

예전에 많이 읽은 책을 새로 구입하기는 뭔가 아깝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올해 들어서 고전들을 다시 한 번 읽어보자는 마음이 들어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더클래식에서 이런 고전들을 만족스러운 가격으로 팔고 있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2.

이 책은 고아인 제루샤 애벗, 통칭 주디(서양식 애칭은 도무지 구조를 모르겠습니다.)가

이름도 정체도 모르는 '키다리 아저씨'의 후원으로 대학에 진학하여

그곳에서 여러 가지 일을 겪고 한 명의 어른 여성으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그린 소설입니다.

 

처음에는 부족한 경험으로 기본적인 상식도 부족하고,

때로는 자신의 출신과 누리지 못한 것들에 열등감을 가지는 모습도 보인 주디였지만

대학에서의 학업과 같은 방 친구들과의 생활로 점점 한 사람의 인간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고

키다리 아저씨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으면서도

품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을 거부하고 여류 작가로서 자립을 위해 한발한발 나아가게 됩니다.

 

특히 후원을 받는 입장으로서 마음가짐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지만 절대 비굴하지 않고, 궁극적으로 자립을 통해서 보답한다.

 

저도 집안 사정으로 제 교육비 대부분을 장학금으로 충당한 경험자지만

저런 마음가짐을 몇 년 동안 유지하는게 결코 쉬운게 아닙니다.

저런 모습은 한 인간으로서 갈채를 보내고 싶어질만큼 눈부신 모습입니다. 

 

3.

주디의 성장 소설로서의 면모 외에도 연애 소설로도 깨가 쏟아집니다.

 

단순히 자신이 후원해주는 대상으로만 생각하다가

대학교에서 직접 만난 후에 점점 한 사람의 이성으로서 신경쓰이는 존재가 되고,

그렇게 되자 후원자로서 권리를 악용(?)하여 지미와 가까워지는 것을 견제하며

자신과 농장에서 추억을 만들도록 하는 저비 도련님의 유치함이 돋보입니다.

 

마지막에 주디가 자립하게 되면 자신과의 연이 끊어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어 매달리고

끝내 주디가 독립하자 앓아누웠다가 주디가 문병을 오자 갑자기 회복되는 건 화룡점정이죠.

아마 둘이 결혼하면 저비스는 정말 주변에 소문이 자자한 애처가가 될 것입니다.

 

이 책이 정말 매력적인 점은 오직 주디가 보낸 편지만을 수록하였다는 것입니다.

독자는 상대의 답장을 상상하면서 둘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가는지 즐겁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디가 상대를 칭하는 호칭이나 문체가 매 편지마다 천차만별로 바뀌는데 

편지와 편지 사이의 간격과 함께 직접적인 언급없이 감정과 거리감을 자유자재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노골적인 표현 없이 이렇게 자신의 의사를 전하는 방식을 고상하다고 생각하는 독자로서

이 책은 정말 표현 기술의 보물창고와도 같은 책입니다.

 

4.

주디는 '세월의 돌'의 유리카, '그남자 그여자'의 유키노로 이어지는

가장 좋아하는 타입의 여성 캐릭터 카테고리 안에 들어있는 캐릭터입니다.

행동은 우아하고 기품있게, 말은 재치있게 한 번 정도는 비틀어서,

그리고 기가 세고,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터프해서 궁지에 몰린 순간 진가를 보여주는 캐릭터.

 

그리고 어렸을 때 의외로 기억에 남았던게 줄리아.

보통 저런 캐릭터는 주인공과 대립하고 마지막에 호되게 당하는게 보통인데

좀 건방지고 속물적이긴 하지만 주인공과 대립하거나 피해를 주진 않아서

오히려 나중에 가면 괜히 줄리아의 뒷담을 하는 주디와 저비스가 성격이 나쁘다는 인상이 들었죠.

그 당시 저로서는 처음보는 타입의 캐릭터여서 새로운 스테레오 타입으로 등록되었습니다.

좋은 예로 아이마스 하면서 이오리 보고 첫 감상 중에 하나가 줄리아 펜들턴이다 였습니다.

 

5.

오랫동안 몰랐던 사실 중에 하나가 이 책의 후속권이 있다는 점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 망설임없이 후속편까지 같이 구입하였습니다.

 

반대로 안타까웠던 사실은 이 작가가 단명하였고 사실상 이 두 권 말고는 남긴 책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책도 그렇고 후속권도 그렇고 정말 좋은 책을 쓰는 작가인데 참 아쉽게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