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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의 영역/독서

해저 2만리 / 쥘 베른 저 / 열림원

1.

매번 명절이 되면 저는 혼자서 집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동안 밀린 포스팅을 소화하고, 방치해두었던 '해저 2만리' 를 전부 읽었습니다.

 

구입한 지 한 달이나 된 소설을 아직까지도 완독을 못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명작이라는 이름에 비해서 소설이 그다지 재미가 없어서 손이 잘 가지 않더라고요.

새로운 해역에 들어갈 때마다 서식하는 어류에 대한 생물학적 분류가 빠짐없이 나오는데

이 내용을 흥미진진하게 읽을 독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읽으면서 계속 궁금하였습니다.

단순히 페이지 수를 잡아먹는게 문제가 아니라 전체적인 글의 템포를 심하게 어그러뜨립니다.

 

2.

또한, 작중에서 등장한 노틸러스 호의 능력이 너무 우월해서 소설에서 긴장감이 생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험소설로서는 노틸러스 호에 탑승하기 전 부분이 훨씬 읽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작중에서 노틸러스 호가 정말 위험했던 것은 남극에서 빙하에 갇혔을 때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바다 속 생물들과 풍경의 시각적인 묘사에 대부분의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어서

소설보다는 영화로 보는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많이 들더군요.

 

3.

그리고 등장 인물들도 제 마음을 끌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점도 한 몫했습니다.

화자인 아로닉스 교수는 노틸러스 호가 제공하는 환상적인 경험에 푹 빠져서

자유가 제약당하는 것조차 감내하려고 하는데 저는 책을 읽으면서 이 점이 영 마뜩치 않았습니다.

저는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가 제약당하는 상황은 어떤 조건으로든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콩세유는 이게 과연 인간인지, 노틸러스 호보다도 시대를 앞서간 로봇인지 분간할 수가 없고,

어린이 만화에서는 보통 분별없는 무뢰한으로 나오던 네드가 오히려 가장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네모 선장은 전에 제 후배가 소설 최고의 발암 물질이라고 일컫던데, 저도 동의합니다.

은둔자를 꿈꾸며 육지와 연을 끊으려고 하지만 그러기에는 육지에 남겨놓은 미련이 너무나도 큽니다.

자신을 정당한 복수자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람의 목숨을 소중한 여기는 인본주의자입니다.

결국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으려고 바둥되니 보는 입장에서 그저 답답할 따름입니다.

 

4.

그나저나 이 저자의 책은 유난히 제목이 국내에서 수난을 당하는거 같네요.

15소년 표류기도 그렇지만 이 책도 일본어 중역을 하면서 항해거리가 1/10로 줄었습니다.

일본의 1리가, 우리나라의 1리보다 10배라는 것에 무지한 당시 번역가들의 문제였는데 이거 역시 이미 굳어져서 바꾸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