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미의 영역/혼자하는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 2(1993) - 총평

앞의 포스팅에서도 언급하였다시피 프린세스 메이커2는 함정투성이 게임입니다.

성 밖의 몬스터를 잡아서 돈을 버는 행위를 남용하면 업보 엔딩으로 직행하고,

수확제에서 편하게 우승하려고 예술치를 올리다보면 국왕이 될 수 있는 능력치로 딸이 화가나 작가가 되며,

요리대회에서 우승하도록 집안일로 요리치를 올리다보면 감수성이 사라져서 요리대회에서 0점을 받게 됩니다.

 

반대로 이 게임은 비기가 넘치는 게임이기도 합니다.

감수성이 일정 이상이면 무사수행에서 요정들의 무도회나 다과회를 볼 수 있는데 이 때 스트레스는 무조건 0이 됩니다.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에서 핵심 중의 하나인 스트레스 관리를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체중을 줄이기 위해서 여름에 바다로 바캉스가는 것을 제외하고 게임 내내 휴식 커맨드를 고를 이유가 없는 수준이에요.

심지어 체력/근력/지능/기품/색기를 올리기 위해서 교육에 비싼 돈을 지불할 필요도 없습니다.

신앙이 20만 넘은 상태에서 서부로 무사수행을 가면 마왕이 신앙 약간의 신앙과 업보 25로 능력치를 50 가까이 올려줍니다.

서부 무사수행 + 성당 아르바이트 2번이 교육 3번보다 효과도 좋은데 심지어 이 방식은 돈을 적게나마 벌어오기까지 합니다.

거기에 무사수행을 다니다보면 민간인 중에 상인이 있는데 본인 말로도 돈이 많아서 강도가 두렵다고 하면 실제로 쓰러뜨리면 큰 돈을 줍니다.

물론 10번 쓰러뜨리면 강도로 체포되지만 역으로 9번까지는 큰 돈에 비해서 거의 페널티가 없다시피하니 자금이 필요하면 이용하면 됩니다.

 

이렇다보니 프린세스 메이커2는 보물찾기 같은 게임입니다. 게임에 숨겨진 함정과 비기를 찾고, 그 달콤한 열매를 즐기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이벤트로 한 번에 증가하는 능력치의 양이 많다보니 처음에는 굉장히 신나고 속도감을 느끼기 좋습니다.

다른 게임에서는 1,2 내지는 심하면 소수점의 능력치 변화에 목을 매는데 이건 한 번에 50 가까이 펑펑 올라가니까요.

이 게임에 익숙한 사람은 아르바이트로 푼돈을 모아, 교육을 시키는 일견 답답해보이는 플레이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문제는 이런식으로 게임을 하다보면 점점 에디터를 쓰는 기분이 듭니다. 딸을 육성하는 기분이 별로 들지 않아요.

딸은 성당 아르바이트만 하다가 종종 무사수행을 가서 원하는 능력치로 바꾸어오거나 스트레스를 다 날리고 옵니다.

아버지로서 딸을 훌륭하게 키워내는게 이 게임의 목표인데 게임에 익숙해질수록 내가 딸을 키운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가끔 생각나면 프린세스 메이커3를 한 번 씩 돌리는게 게임 시간으로 8년 동안 소중히 키운 딸이 아버지 품을 떠나는 아련한 느낌 때문인데

이 게임은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무슨 작업하는 느낌이 들지 진한 정서가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비기를 제외하고 플레이하려면 교육의 효율이 너무 나쁘고, 무엇보다 설계 자체가 이런 비기를 안다는 전제 하에 되어있습니다.

 

이 게임은 결국 최고의 엔딩을 보기 위해 하는 게임입니다.

프린세스 메이커3가 '이번에 공주가 되었네. 다음에는 무엇을 해볼까?' 하며 고민하는 게임이라면

프린세스 메이커2는 '이번에는 도대체 뭐가 모자라서 국왕을 못한걸까. 다음에는 이렇게 해봐야지.'를 고민하는 게임입니다.

둘 중 어떤 것이 더 우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최고의 엔딩을 본 시점에서 후자는 아무래도 더 플레이할 동기가 더 약하네요.

그리고 육성 게임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2와 3를 비교한다면 적어도 지금은 3의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