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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의 영역/ㄴ 아틀리에 시리즈(잘부르그 시리즈)

마리의 아틀리에(1997) - 진정한 엔딩으로

 

1. 수공업은 공장식 노동을 이길 수 없다.

 

 갑자기 무슨 경제 서적이나, 역사 서적에나 나올 법한 글귀가 나와버렸습니다. 그런데 적어도 이 게임에선 이것은 진리였습니다. 지난번 플레이에서 좋은 엔딩을 보지 못했던 것은 마리의 레벨이 낮아서였고, 그 원인은 마리가 채취부터 모든 공정을 직접 하면서 턴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그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초반부터 1500원을 털어서 세계 약초 사전을 구입하고, 거기에 있는 시금치 S를 조합하였습니다. 그러면 며칠 후에 요정의 팔찌를 받을 수 있고, 요정을 고용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초반에 계속 파산의 위험에서 외줄타기를 하면서 어찌어찌 요정 하나를 메디아 숲에 상주시키면서 뉴즈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데 성공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크래프트를 대량 생산하여 아카데미에 팔아서 빠르게 수익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후반부에는 두 명의 요정이 메디아 숲에, 한 명의 요정이 헤겔 호수에서 재료를 공급하고, 한 명의 요정이 크래프트와 메가 크래프트를 번갈아가면서 생산하고, 한 명의 요정이 중화제나 불타는 모래 같은 기타 물품을 생산하는 공장식 노동 구조가 확립되었습니다. 덕분에 사장(?)인 마리는 마음 편히 모험을 다니면서 레벨 업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2. 마리 그리고 시아

 

 

본명 마를로네, 줄여서 마리. 이 게임의 주인공입니다. 성은 작중에서 나오지 않았는데 원래 중세 유럽에서 평민이 성이 없는건 흔한 일이니 저는 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설정상 19세로 육성 요소가 강한 게임의 여주인공 치고는 나이가 만만치 않습니다. 19세면 우리나라 나이로는 21세인데 이미 성인이잖습니까(...) 그리고 일러스트에 따라서 겉보기 나이도 차이가 많이 나는데 위의 엔딩 일러스트에서는 10대 초중반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데 비해서 게임 대화 창에 뜨는 얼굴 그림은 20대 중반 이후에 귀부인으로 보입니다. 사실 다들 엔딩 일러스트에는 너무 어려지고 게임 내에서는 너무 늙어보입니다.

 

 

솔직히 마리는 아무리 봐도 심각한 문제아가 맞습니다. 낙제, 그거도 아카데미 창립 이래 최하라는 경이적인 낙제생으로

게임 시작 시 중화제 3종류와 비구름의 돌 빼고 아무런 조합법을 모릅니다.사실 한 15세 정도면 아직 철도 없을 나이이고, 한창 놀고 싶을 나이라고 생각도 하는데 저 나이면 좀.. 그리고 마리의 경우 사회성도 좀 걱정되는 게 연금술 아카데미에서 친구도 시아 한 명 밖에 없고, 벼룩시장에도, 여름 축제에도, 국왕 생일 행사에도, 연말 무투제에도 시아가 와서 데려가지 않으면 전~혀 참여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다니는 학교의 교장 선생님과 수석도 모를뿐더러, 엔딩 3번을 보면 아예 성적 우수자가 올라가는 마이스터 코스의 존재 자체도 모르고 있습니다. 솔직히 시아가 없으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할지가 걱정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 게임의 이야기를 재능은 있지만 노력 부족의 사회성 제로의 문제아가 선생님의 엄격한 지도와 친구의 따뜻한 헌신으로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로 받아들였습니다.

 

3. 조연 캐릭터들

 

1) 무기점 아저씨

이 게임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캐릭터. 처음 보았을 때는 스킨 헤드인 줄 알았는데 정체는 머리카락에 집착하는 대머리.

두 번에 걸쳐서 발모제를 만들어줄 것을 요구하는데 특히 두 번째 사용 후에 모습은 모니터에 물을 뿜을 수준입니다. 문제는 이 발모제 이벤트가 마리의 최강 무기를 얻기 위한 이벤트라는 것입니다. 제작사의 센스가 여러 모로 비범합니다.

 

2) 잉그리드 선생

최종 보스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마음 착한 선생님.

 

나올 때마다 마리가 덜덜 떨게 만드는 위엄이 넘치시는 분입니다. 사실 마리의 전적을 보면 좀 혼나도 할 말이 없죠. 마리가 실적을 쌓으니 찾아와서 도서관 통행증도 주고, 시아가 쓰러지니 바로 찾아오시는 걸 보니 학생들에 관심을 가지시는 좋은 선생님입니다. 그 밖에 만날 때마다 틱틱되는 학년 수석이라든가, 죽은 애인을 그리워하는 여자 용병이라든가,

형하고 화해하고 싶다고 성격이 좋아지는 약(?!)을 부탁하는 전직 기사라든가, 여러 가지 캐릭터가 있기는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저 정도만 기억에 남네요.

 

4. 엔딩들

 

엔딩 1번입니다.

에릭실을 조합해서 시아의 병을 고치고, 마리의 레벨이 50렙을 찍는 것이 엔딩 조건입니다. 아무리 봐도 세계를 구하는 영웅과, 그 영웅을 기다리는 고향 마을 소꿉친구 구도입니다. 마지막에 웃는 얼굴로 돌아온 모습이라도 한 장 넣어주었으면 훨씬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저대로라면 뭔가 시아가 쓸쓸해 보이니까요.

 

엔딩 3번입니다.

연금술 도감을 완성시키면 달성하는 엔딩입니다. 시스템 상으로는 위의 엔딩보다 더 좋은 엔딩으로 판정하여 둘 다 만족시키면 이 엔딩이 뜨지만 저는 위의 엔딩 쪽이 더 마음에 드네요.제가 보기에는 마리는 학자 타입이 아닙니다. 연구실에서 책을 읽고, 제자들을 가르치기보다는 전 세계를 돌면서 재료를 모으고 여러 가지 일들과 부딪쳐보는 것이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엔딩 0번, 히든 엔딩입니다.

시아의 병을 고치고, 마리와 시아의 레벨이 50 레벨을 달성하는 것이 엔딩의 조건입니다.

 

건강해진 것을 뛰어넘어서 지나치게 강해진 시아와 함께 무투 대회를 우승하고(...) 둘이서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엔딩입니다. 엔딩에서 먼지떨이에 무릎 꿇은 엔데르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일종의 개그 엔딩입니다. 그런데 어차피 이 게임은 개그 요소가 많은 물건이니 이게 진 엔딩이라고 믿고 싶네요.후속작을 하면 어떤 게 진 엔딩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