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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이야기

키우던 강아지 한 마리를 보내줬습니다

1월 말에 키우던 요크셔테리아 중 하나가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목에 커다란 혹이 하나 생긴 것 이외에는 식욕도 왕성하고, 외출도 좋아하고, 활동량도 괜찮아서 실감하지 못했는데

미국에서 돌아오니 그 전에 비해서 눈에 띌 정도로 근육이 줄어있었고 그저께부터는 스스로 걷지를 못하더군요.

 

스스로도 뭔가 예감이 있었는지 평소에 잘 오지 않는 제 방에 오더니 앉아서 30분 넘게 저를 쳐다보다 가질 않나,

밤에 어머니를 깨우더니 옆에서 2시간 동안 같이 누워있다가 침대에서 내려가질 않나, 안 하던 행동을 하더군요.

저도 어제 출근하기 전에 이것이 같이하는 마지막 순간이 되더라도 후회를 남기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힘들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몸을 번쩍 들어서 안아주고, 한참 동안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개도 몸이 불편하면 주인이고 뭐고 짜증스러워한다던데 그러는 것 없이 눈을 지긋이 감고 행복한 표정을 짓더군요.

그리고 저녁 6시에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화장실 구석에서 숨을 거둔 녀석이 발견되었다고요.

 

급히 퇴근하여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가 차갑게 식은 시신을 안고 계셨습니다.

개가 죽으면 혀가 늘어진다고 하는데 그런 것도 없이 마치 자는 것처럼 살짝 혀가 빠져나온채 편안해 보이더군요.

마지막 순간이 고통스럽지 않은 것 같아서 슬프다는 마음 이상으로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많이 우셨습니다. 특히나 어머니를 잘 따랐던 녀석이었기에 상심이 크시더군요.

생각해보면 제가 KAIST에 있는 동안 키우기 시작한 녀석이어서 그런지 처음 제가 집에 왔을 때 노골적으로 저를 견제했었죠.

거실에서 어머니와 나란히 누워있으면 작은 몸으로 저를 밀어서 치우려고 하질 않나,

주무시는 어머니에게 이불 덮어드리러 가는데 이를 드러내면서 막아서질 않나, 물론 딱밤으로 응징당했죠.

때대로 무는 시늉까지 하며 덤비던데 시골에서 큰 개들과 부대껴 본 경험이 있는 제가 입 안에 주먹을 집어넣으니 꼬리를 말더군요.

 

돌아오신 아버지와 같이 밤 11시에 화장장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 1시간 후, 한 줌의 재로 변하였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명절 때마다 볼 수 있도록 산소가 있는 산기슭 꽃밭에 묻을거라고 하시네요.

어머니는 오늘도 자꾸 눈시울을 붉히시고, 저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가슴이 먹먹하여 오랜만에 취하도록 마셨습니다.

정작 가장 슬퍼할거라고 생각한 다른 세 마리는 아무런 반응이 없네요. 아내를 잃은 남편과 어미를 잃은 두 마리의 새끼인데 말이죠.

그래도 오늘로 4마리 중에서 오줌을 못 가리던게 누구인지 확실히 밝혀졌습니다.

 

12년 동안 마지막까지 오줌도 못 가렸지만 좋은 추억이 계속해서 떠오르는거 보면 이런 이별이 있더라도 좋은 인연이었다.

밤 하늘의 별이 되었다, 사람이 죽으면 먼저 죽은 반려 동물이 마중을 나온다, 같은 소리는 너무 낯 간지럽지만

그래도 제 인생의 가장 다사다난한 시기를 같이 하였기에 제가 무덤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기억하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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