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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의 영역/혼자하는 게임

파랜드 택틱스 2 : 시간의 이정표(1997)

파랜드 택틱스 2 : 시간의 이정표입니다.

90년 대 당시는 친구끼리는 게임팩이나 게임 CD를 돌려가면서 하던 시기였습니다.

친한 친구들끼리 서로 게임을 겹치지 않도록 사전에 계획을 세우기까지 하였으니까요.

이 게임은 그렇게 친한 친구에게서 빌려서 한 게임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중학교 때 서울로 이사가고 난 다음에 연락이 끊어졌는데 잘 지내고 있을까 모르겠네요.

 

윈도우즈가 당시 95에서 10으로 바뀌었고,

시스템도 32bit에서 64bit로 바뀐 지금도 제대로 실행이 될까 걱정을 했었는데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아슬아슬하게 플레이에 큰 지장이 없는 정도로 구동이 됩니다.

그 사이에 어느 능력자 분이 PS 버전의 데이터를 사용하는 음성 패치까지 만드셨더군요.

 

제목부터 이야기하면 원제는 파랜드 사가 시리즈의 속편으로 '파랜드 사가 시간의 이정표'입니다.

하지만 국내에 파랜드 택틱스라고 하면 알아듣는 사람이 파랜드 사가라고 할 때에 비해 10배 이상 많다고 자신할 수 있고,

이럴 경우 굳이 원어를 써야할 이유가 있지 않은 이상 파랜드 택틱스라고 부르는게 맞다고 봅니다.

 

이 게임을 다시 잡으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바로 번역입니다. 물론 안 좋은 의미에서지요.

당시에도 대사가 앞뒤가 안 맞는데다가 띄어쓰기, 맞춤법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는데

음성이 존재하고 제가 일본어 청해가 되서 대사를 바로 비교할 수가 있는데 참혹한 수준이였습니다.

설마 이 정도까지 번역이 엉망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기본적인 일본어 단어조차 엉뚱한 뜻으로 번역되어서 원문과는 동떨어진 문장이 나옵니다.

조금만 신경쓰면 대사가 상황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 정도인데 잘도 돈 받고 파는 물건에 이걸 그대로 넣을 생각을 하였네요.

엔딩 크래딧에 번역에 도움을 준 사람이 올라오던데 저라면 부끄러워서 못 올렸을 것 같습니다.

 

그 다음은 역시 당시에는 없었던 음성에 신경을 쓰게 되네요.

여성 캐릭터들 목소리는 별로 들은 기억이 없는데 알 목소리는 듣고서 '키라 야마토네'라고 바로 중얼거렸습니다.

전체적으로 제가 상상하던 목소리와 비슷한 목소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슬픈 엇갈림

제가 생각하는 이 게임의 하이라이트, 최고의 명장면입니다.

당시 어린 감성에도 참 기억에 남았던 장면이지요.

길드에 소피아가 잡혀갔다는 소식을 들은 T.T는 목숨을 걸고 단신으로 잠입하여 마침내 길드에서 만난 소피아에게 청혼합니다.

그러나 그 소피아는 8년 후 미래에서 온 소피아였고,

그 시간대의 소피아는 T.T가 자기가 아닌 다른 여자에게 청혼한다고 생각하여, 배신감에 눈물과 함께 도망치게 됩니다.

미래의 소피아는 그제서야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고 T.T가 자신을 배신한게 아닌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눈물과 함께 8년을 기다려달라고 부탁하고, T.T는 후임 길드 마스터가 되어 기다리며 어트랙트를 아름답게 재건합니다.

기나긴 인고의 시간을 넘어서 가슴아픈 오해가 풀린 이 커플이 알과 카린의 커플보다 훨씬 기억에 남고 마음에 듭니다.

 

그 시절에는 T.T를 단순한 무능력자로 생각했습니다.

과거 길드 마스터를 쓰러뜨린 것도 결국 주인공 일행이고 게임 내내 전혀 활약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보니 비록 길드 마스터가 쓰러졌다고 해도 그 밑의 수하나 부랑배들이 바로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들을 소탕하여 마을의 치안을 유지하면서 당시 불법적인 일을 통해 치부하고 있던 마크도갈 씨 등 유력자의 지지를 얻어내고

암흑가였던 도시를 아름다운 무역의 중심지로 성장시킨 것은 보통의 능력이 아닙니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다시 보니 느낀게 마크도갈 씨가 아리스를 이유없이 과보호하는게 아니더군요.

과거에 더러운 일로 재산을 모았고, 지금은 손을 씻고 반대로 해적 토벌에 앞장서서 후원을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언제 길에서 칼을 맞아도 이상하지 않을 위치이니 외동딸을 함부로 돌아다니게 할 수 없죠.

그리고 그 짧은 기간 동안 벌써 세 번이나 납치당하면서 실적(?)도 훌륭합니다.

 

엔딩 CG입니다.

단순한 일러스트 한 장이지만 저는 이걸 상당히 좋아합니다.

모두가 다 같이 웃고 있는 것만으로도 게임을 다시 돌이켜보면서 뿌듯함을 느낄 수 있고

모니터에서 마치 '그 동안 고마웠어, 앞으로 다시 만날 날이 있기를 빌게. 바이바이' 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PS.

이 게임을 다시 클리어하는데 정확히 1주일이 걸렸네요.

제가 이 게임을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언제든지 기분내킬 때 가볍게 시작해서 가볍게 끝낼 수 있는 게임이 이상적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