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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이야기

폭풍 같았던 이틀

 

 토요일 병원에서 월요일 정오 즈음에 수술 시간을 잡았습니다. 그래서 전날 밤에 입원 시 필요한 짐을 캐리어에 꾸렸고, 8시에 일어나서 9시 반에는 출발하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회사에는 미리 연차를 냈고요. 그러나 계획이 언제 망그러질 줄 모르는 것이 우리 사는 세상이죠. 제가 눈을 뜬 것은 아침 8시가 아니라 새벽 5시였습니다. 와이프가 저를 깨우더군요. 심야 2,3시부터 진통이 오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가볍게 오고 끝날 줄 알았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프다고 하더군요. 와이프는 걸을 수도 없을 상황이라서 결국 119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운이 나쁘게도 입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파트여서 구급대원도 아파트 위치와 구급차 용 입구를 헷갈렸고, 경비원도 구급차가 왔을 때 취해야 할 행동에 익숙하지 않아서 생각보다 시간을 잡아먹었습니다. 결국 와이프는 초주검이 되어서 병원에 도착했고 바로 수술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아침 7시, 제 딸은 태어났습니다.

 

 기다리면서 새벽에 양가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고, 바로 병실을 잡았습니다. 와이프가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 하면 가능하면 1인실로 해달라고 전에 부탁을 했었고, 다행히 비어있는 1인실이 있더군요. 미리 병실에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으니 9시 반 쯤 수술을 마치고 와이프가 올라오더군요. 몸도 못 가누고 많이 아파하더라고요. 잠시 옆에서 피를 닦아주다가 집으로 출발했습니다. 제 식사 문제도 있지만 구급차에 자리가 없어서 짐을 전혀 못 가지고 왔었거든요. 저는 운전을 못하니 캐리어를 밀고 백팩을 메고, 양손 가득 짐을 챙겨서 출발했는데 하필이면 갑자기 비가 쏟아지더군요. 급히 택시를 부르려는데 지난달에 주택 취득세를 내느라 카드가 한도초과 상태여서 카카오 택시도 사용 못하고 진짜 순간 세상이 짜증나더군요. 어찌어찌 택시를 잡아서 병원으로 돌아갔는데 하필이면 병실 카드키를 집에 놓고 와서 결국 점심 먹고(롯데리아에서 해결했습니다) 한 번 더 집에 갔다왔습니다. 뭐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피크민 걸음 수는 많이 올라갔네요.

 

 그 후 오후 내내 병수발을 들었습니다. 와이프는 몸을 일으켜 세우지도 못하는 상황이나 모든 것을 저에게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니 집에서 매트를 가져와서 침대 옆에 깔고 기다리다가 부탁을 하면 바로바로 들어주었습니다. 사실 간호사들도 오고 가면서 상황을 확인하고 의학적 처치를 해주기에 제가 하는 일은 목 마를 때 정수기에서 물을 떠오고, 패드에 피 고이면 교환해주고, 출혈이 심하면 닦아주고, 땀 많이 흐르면 닦아주고, 지루해하면 말 상대하고 안아주는 정도였습니다. 주기적으로 해줘야 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집중을 할 필요는 없어서 책을 읽거나 핸드폰을 보거나 하다가 생각나면 하곤 했습니다. 대기하면서 가져간 '마리아 님이 보고계셔'를 읽고, 네이버 시리즈에서 '기동경찰 패트레이버'를 읽고, TFT를 했습니다. 그래도 4시 반에 신생아 면회 시간에 아가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좋았네요. 저녁은 점심 먹으러 나갈 때, 나왔던 빵과 커피로 해결했고 계속 와이프 병실에 있었습니다. 

 

 원래 계획은 와이프 침대 옆에서 매트를 깔고서 저도 같이 자는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제가 할 일이 없다는 것과 새벽 일찍 일어나서 계속 일어나 있던 제가 체력적으로 힘들어해서 결국 저는 집에 돌아가서 잤습니다. 대신 새벽 4시 50분에 일어나서 5시 반까지 병원에 와서 다시 수발을 들었죠. 이 날 아침부터는 와이프는 소변줄도 제거하였고 해서 저와 함께 걷는 연습도 하곤 해서 첫날만큼 할 일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기력도 회복해서 말을 하는 횟수도 늘었고요. 아침 11시와 오후 4시 반에는 같이 아기를 보러 갔습니다. 

 

 저녁에 정상적인 저녁 식사가 가능한 것을 확인하고 저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내일은 출근해야 하거든요. 돌아와서 집안 청소와 빨래를 하고 맥주를 마시면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폭풍 같은 이틀은 끝났고 이제는 휴직 준비를 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