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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의 영역/독서

조선 국왕의 일생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글항아리

 

역사를 읽는 목적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흥미나 재미를 위해서 읽는다면 가려서 읽을 필요가 없겠지만

지금 이 순간을 이해하기 위해서 역사를 읽는다면 고대사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가까운 과거일수록 지금의 현실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약간의 폭론을 사용하면 조선 이전의 역사는 판타지처럼 읽어도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우리나라라고 생각하고 권역을 확정한 것도 조선시대이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의 기원을 쫓아가보면 대부분 조선사 내에서 답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조선사를 읽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그냥 읽는 것도 아니라 뜯고, 해체하고, 그 구조를 이해하는 것을 말입니다.

이 책은 조선을 이해하는 가장 큰 축 중 하나인 국왕을 다각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왕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다스리고, 어떻게 죽는지를 차분히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조선이 어떤 나라인지를 좀더 머리 속에 쉽게 그릴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은

조선은 결국 저 높은 곳에 있는 왕조차도 인간이라는 범주로 묶어내었다는 것입니다.

이이의 사상은 결국 왕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덕성을 갈고 닦지 않으면 보잘 것 없는 인간이고

이를 위해서는 자신보다 인격적, 학문적으로 우월한 신하에게 가르침을 구해햐한다는 것이니까요.

아직까지도 왕에게서 신성을 유지하려고 하는 옆 나라와 대조해보면 재미있는 현상입니다.

 

강한 왕권과 중왕집권체제를 선호하는 분들이 보기에는 마뜩치 않을테지만

(개인적으로 이는 어느 정도 군사 독재 정권 시절의 교육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을 역사에서 중요한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이 비교적 순탄하게 민주주의로 전환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책에서 살짝 아쉬운 것은 자료나 예시가 지나치게 영조와 정조에 몰려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영조와 정조는 조선의 왕 중에서 상당히 이질적인 존재이고,

특히 정조는 이후 모든 왕은 정조의 프레임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존재감이 큰 왕이어서

 

그런걸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충실한 책이었습니다. 좀 많이 비싼게 흠이긴 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