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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의 영역/독서

소드걸스 스쿨 / NEOTYPE 저 / 영상노트

2010년 대 초반에 나름 기대하던 국내 IP가 하나 있었습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서브컬쳐 매니아 층을 상대로 장사는 무리라는 시선에도 불구하고

대놓고 일본산 미소녀 게임과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층을 노린 TCG 게임이었죠.

기억하시는 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바로 소드걸스였습니다.

 

처음엔 일러스트 장사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카드 게임으로서도 참신한 재미가 있었습니다.

매턴 선후공과 카드의 발동 순서라 랜덤이라는 것이 독특한 점이었는데

TCG에 처음 플레이하는 사람도 카드를 올리기만 하며 되니 쉽게 입문할 수 있고,

반대로 게임에 익숙해질수록 발동 순서에 따른 변수와 확률을 고려하면서 카드를 올려야 하니

고려해야할 점도 많고 상대와 피말리는 심리전도 벌여야 했습니다.

 

이런저런 점 때문에 저는 당시에 꽤나 재미있게 즐긴 게임이었고,

그 이상으로 국내 시장에서 성공하기를 응원하는 게임이기도 하였습니다.

 

 

소드걸스 스쿨은 이 게임의 미디어믹스 소설 중의 하나입니다.

소드걸스 메인, 스쿨, 다크 이렇게 3개의 시리즈와 단편 모음집인 엑스트라가 있었죠.

이 중 다크는 작가가 오리지널 캐릭터를 지나치게 강하게 설정하여 원작 팬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이러한 작품에서는 범하지 말하야 하는 실수를 하였기에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았고

메인은 다 괜찮은데 원작과 스토리의 진행 방향이 달라서 평행세계로 밖에 생각할 수 없는게 아쉽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소드걸스 스쿨은 미디어믹스 소설로서 상당히 우수한 부류였다고 생각합니다.

본편의 큰 흐름을 지나치게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본편에서는 분량 관계상 조명하기 힘들었던 여러 등장 인물들의 매력을 잘 전달하였습니다.

 

인 게임 텍스트의 영향으로 단순한 무능하고 게으른 학생회장으로 생각하던 셀린을 재조명하였고

나나이 하이캐슬과 아스미스 하라의 캐릭터를 확립해주었습니다.

게임에서 짜증나는 존재였던 위클리 데일리와 미지의 존재였던 오르테 보어,

그 밖에 학생회 임원들, 도서부원들조차 자신이 어떤 인물인지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제일 마음에 든 것은 3권.

앞의 두 권에 비해서 많은 캐릭터를 등장시키면서도

각각의 캐릭터가 하나도 소외되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목적을 가지고 움직입니다.

전체적인 템포도 5권 중에서 가장 괜찮습니다. 클라이막스가 늘어지는 문제도 거의 없고요. 

 

주인공인 노이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불면의 저주라는 것은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수면 장애가 좀 있고 실제로 푹 자기 위해서 술을 배운 저로서는 뼈 속 깊이 공감합니다.

잠을 제대로 못 자는건 어마어마하게 괴롭고 고통스러운 겁니다.

 

노이는 소설 속에서 어마어마하게 고생하면서

수많은 캐릭터들과 인간 관계를 맺으면서 그녀들과 이야기를 자아냅니다.

다만 작가의 필력의 한계인지 클라이막스 파트에서 캐릭터가 좀 붕 뜬다는 느낌을 많이 받네요.

캐릭터 묘사 쪽은 아스미스나 나나이 쪽이 훨씬 깔끔하게 잘 된 것 같습니다.

 

마지막 권 에필로그에서는 노이가 공립학교를 떠나서 사립진영의 리누스 팔코와 엮이고 있길래

소설 미디어믹스 2탄이 곧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4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소식이 없는걸 보니 나올 가능성은 비관적일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오랜만에 소드걸스를 접속해보았습니다.

열심히 키워놓은 아이디가 있었는데 몇 년 동안 접속을 하지 않았더니 삭제가 된 것 같습니다.

덕분에 아이디를 새로 생성하는 번거로움을 겪어야 했네요.

 

게임 홈페이지는 완전히 폐허나 다름없더군요.

반 년 넘게 업데이트 자체가 끊겼고, 소수의 유저만이 게임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 유저들마저 게임이 망했고 얼마 안 가서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완전히 초보자 덱으로 던전을 돌아보았는데

그래도 이런 상태까지 되기 전에 신규 유저 유치를 시도했는지

새로 시작하는 유저들을 배려하는 시스템이 추가되어 나름 수월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아이디도 만들었으니 가끔 접속해서 게임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차피 더이상 업데이트도 되지 않으니 급할 이유도 없고 느긋하게 즐겨볼까 합니다.

이 게임이 화려하게 다시 날아오르리라고 기대는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이 게임의 마지막 정도는 기억해주고 싶네요.

 

한 가지 제작사에게 부탁하고 싶은게 있다면

어차피 망한거 스토리의 전체적인 아웃라인이라도 공개를 좀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스토리를 어떻게 진행할 생각이었던건지 솔직히 많이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