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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의 영역/애니메이션-영화

Fruits Basket(2001)

1.

얼마 전 후르츠 바스켓 애니메이션이 리메이크 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후르츠 바스켓은 저에게 각별한 의미를 가지는 소중한 작품이고, 반드시 보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원작과 비교되는 것은 리메이크 작의 피할 수 없는 숙명입니다.

특히 후르츠 바스켓은 2001년에 나온 애니메이션이 팬들의 사랑을 받았기에 더더욱 그럴 수 밖에 없지요.

그래도 추억으로 미화된 작품과 경쟁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해서 공정한 비교를 위해 오랜만에 DVD를 꺼냈습니다.

과거의 그림자 때문에 작품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면 저로서도 슬프니까요.

 

그리고 마지막까지 보고 나니 클래식으로 분류되는 작품을 기준으로 평가하는건 허들이 너무 높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2.

본 작품은 당시 연재 중이었던 인기 순정 코믹 만화인 '후르츠 바스켓' 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타카야 나츠키가 그린 이 작품은 가장 많이 팔린 순정만화로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순정만화는 남성 팬들에게 부담스러운 경우가 많은데 남녀노소 모두가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는게 제일 큰 것 같습니다.

 

만화 내용은 12지 + 고양이의 혼령이 깃든 소마 가의 멤버들과 혼다 토오루의 이야기입니다.

혼령에 깃든 사람들은 몸이 약해지거나 이성과 끌어안으면 혼령에 해당하는 동물로 변신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즐겁고 유쾌한 분위기로 시작하지만 정상적인 인간 관계를 형성할 수 없다는 이들의 아픔이 부각됩니다.

이 중 상당수는 부모와도 제대로 된 관계 형성에 실패한 이들이죠.

이들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혼다 토오루와의 만남으로 용기를 얻고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만화의 중심이 됩니다.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는 제가 고등학교 때였는데 정말 성적에 몰두해서 공부 외의 어떤 것도 신경쓰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덕분에 대학교 합격하고 돌아봤을 때 정말로 인간 관계가 엉망징창이라서 삶에 강한 회의감이 들었었죠.

특히 고등학교 시절 인간 관계는 거의 파탄에 가까운 상태였습니다.

그러던 저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준 작품이어서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은 각별합니다.

저에게 굉장히 특별한 작품 중 하나로 꼽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3.

애니메이션은 26화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직 완결되지 않은 원작을 기반으로 제작되었기에 크고 작은 변경점들이 있습니다.

 

가장 큰 변경점은 토오루가 고양이 혼령의 본 모습을 알게 되는 6권의 내용으로 대단원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더 많은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해서 7,8권에 나오는 히로와 리츠의 등장을 앞으로 당겨오기도 하였고,

유키의 이야기를 더 다루기 위해서 뒤에 나오는 아야메의 가게 방문이나 모토코 선배와의 일화도 가져왔지만 

23권으로 막을 내린 원작과 비교하면 전체 분량의 1/3에 못 미치는 내용만을 다루었습니다.

 

이러한 조건에서 감독 이하 제작진은 원작에 대한 빼어난 이해도를 보여주며 높은 완성도의 작품을 선사하였습니다.

원작에 없던 장면들도 꽤 삽입되었지만 이러한 장면들이 작품에 겉돌기는커녕,

자신이 벌인 일의 뒤처리를 하는 카구라나 부추 냄새가 싫어서 마스크를 쓰면서까지 토오루에게 부추 죽을 끓여주는 쿄우처럼

원작 이상으로 캐릭터를 잘 묘사하여 나오지 못한 연재 후반부의 모습이 아쉽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특히 클라이막스에서 원작과 달리 유키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모습을 그리면서 26화로 '완성'된 작품으로 만들었죠.

 

원작이 후반으로 가면서 전반부의 코믹한 장면보다 약간 질척거리는 부분이 많아졌기에

후르츠 바스켓의 느낌을 더 잘 살린 것은 원작보다 애니메이션이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4.

이 작품을 이야기하면서 음악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단순히 음악이 좋은 작품을 넘어서, 애니메이션 보고 눈을 감으면 머리 속에서 은은하게 배경음이 울리고,

나중에 만화책을 읽으면서도 어디선가 삽입곡이 들리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작품은 이게 처음이었습니다.

 

오프닝 곡인 'For Fruits Basket'은 거장의 솜씨라는 말이 아깝지 않습니다.

1분 남짓한 시간에 이 작품이 어떤 작품인지, 무엇을 말하려는 작품인지 가사로 음악으로 알려주는 곡은 흔치 않습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던 고등학생 시절에는 처음 들었을 때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오더군요.

 

성우들의 호연도 뺴놓을 수 없습니다.

혼다 토오루 역의 호리에 유이나, 소마 쿄우 역에 세키 토모카즈는 한 시대를 풍미한 성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다가

특히 호리에 유이 같은 경우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훌륭한 이해도를 보여주면서 작품을 한 단계 위로 끌어올려주었습니다.

 

5.

결국 새로운 후르츠 바스켓 애니메이션에 이 정도 완성도를 보여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좀 과한 것 같고,

이 작품의 정체성, 상처받은 이들이 토오루에게서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 모습을 잘 살려주는 것과

분량상 구 애니메이션에서 다루지 못했던 '신데렐라틱한 이야기' 연극을 재미있게 그려주는 것 정도만 잘해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