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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의 영역/혼자하는 게임

Warcraft2 - Tide of Darkness(1995)

 

1.

블리자드 사의 고전 명작으로 불리는 워크래프트2 입니다.

 

제가 선택해서 산 첫 번째 게임이 창세기전 외전2 - 템페스트였다면 이 워크래프트2 합본은 제 동생이 선택해서 산 첫번째 게임입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첫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기도 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집 사정으로 여러 차례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에 들어간 제가 없는 상태에서 이사를 하게 되었고

그 때 산 수많은 정품 CD들이 필요없는 물건으로 분류되어 쓰레기로 묶어서 버려졌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당시에 산 게임들을 지금와서 다시 하려면 인터넷에서 불법 다운로드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 게임도 인터넷에서 구해서 플레이어하였습니다.

나중에 배틀넷 에디션이 추가로 나왔지만 그 당시 제가 한 버전이 도스 버전이었기에 도스 버전으로 구해서 플레이하였습니다.

 

2.

배경 스토리는 비교적 간단합니다.

 

전작에서 인간들은 다른 세계에서 침략해오는 오크들을 막는데 실패하였고 생존자들은 바다 건너 다른 인간 왕국으로 피난하였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오크들은 만족하지 않고 함대를 조직해 바다를 건너 다른 인간 왕국들마저 손에 넣으려고 하였고

이에 인간 왕국들의 연합과 오크들의 두 번째 대전쟁이 시작됩니다.

 

플레이어는 인간 측에서 우리의 세계에서 오크들을 몰아낼 수 있고, 반대로 오크 측에서 인간들을 멸망시킬 수도 있습니다.

후속작으로 볼 때 인간으로서 플레이하는 것이 정사입니다.

 

현재까지 확장된 워크래프트 세계관과 비교하면 몇 가지 눈에 띄는 점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현재 인간 왕국 중 하나인 스톰윈드가 아제로스라고 불린다는 점입니다.

두번째는 육지로 이어져있는 로데론과 스톰윈드가 당시에는 바다로 나눠어져있었다는 것입니다.

후에 설정을 변경한 흔적이겠지만 본토로 퇴각하려는 오크의 함대를 막아서는 미션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살짝 기분이 묘합니다.

하기사 여기서 휴먼 승리의 주축이었던 쿨 티라스는 아예 개발자들 뇌리에서 사라졌죠.

 

3.

제가 위에서 쿨 티라스가 승리의 주축이라고 언급한 것처럼

정사인 휴먼 기준으로 스토리를 쫓아보면 해군력을 바탕으로 한 인간 연합의 대반격입니다.

 

오크에 파상 공세에 고전하고 있는 육군과는 달리 쿨 티라스를 주축으로 엘프들의 지원까지 받은 휴먼의 해군은

도서 지역의 오크 기지들을 차례차례 무너뜨린 후(미션3, 미션4)

대대적인 상륙작전으로 오크의 허리를 끊어버리는데 성공합니다.(미션5, 미션6)

 

오크는 여러 가지 수를 써가며 버텨보려고 하지만 티르의 손 근처 보급기지마저 전부 잃어버리고(미션8)

휴먼 내부 협력자인 알터랙마저 발각되어 멸망해버리면서 버틸 기력을 잃어버립니다.(미션 11)

이로 인해 오크는 전면적인 퇴각을 시도하지만 크레스트폴 해전에서 괴멸적인 타격을 받습니다.(미션 12)

 

간신히 아제로스로 돌아간 오크는 인간 연합의 총사령관인 로서 경을 비열한 술수로 죽이는데 성공하며 반격을 꾀하지만

(개인적으로 후에 바꾼 설정 중 최악이라고 생각합니다. 로서와 둠해머 모두의 캐릭터를 훼손했어요.)

결국 검은바위 첨탑 전투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맞이하며(미션 13),

최후에는 고향 세계와 아제로스를 잇는 포탈마저 파괴됩니다.(미션 14)

 

현재 와서 다시 읽어보면서 든 생각은 만약 이 게임을 한국 개발사에서 제작했다면 임진왜란 이야기가 나왔을 것 같습니다.

육전에서의 패배를 해군의 승리를 바탕으로 허리를 끊어서 이긴 전쟁은 저 정도 밖에 떠오르지 않네요.

 

4.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을 저는 분위기를 꼽고 싶습니다.

 

후속작인 스타크래프트에서처럼 과장되거나 때론 코믹하게 보이는 사망 연출이 아닌

외마디 비명과 함께 쓰러져서 시체가 남는 연출은 유닛의 사망이 가볍게 느껴지지 않게 하였고

명작으로 손색이 없을만큼 묵직한 OST와 웃음기 하나 없는 브리핑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적 유닛에게 노출된 일꾼들이 순식간에 저항도 못하고 죽어나는 환경에서 패배가 죽음이라는 것을 떠올리게 됩니다.

 

반대로 단점을 꼽으라면 이게 잘 만든 전략 시뮬레이션이라고 묻는다면 저는 고개를 가로젓고 싶습니다.

전략 시뮬레이션의 시스템은 현재와 비슷하게 완성되고 있지만 유닛 간의 밸런스는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일단 가장 치명적인 것이 조합조차 필요없이 성기사/오우거 마법사만 뽑으면 끝이라는 것입니다.

원거리 유닛들이 너무나 성능이 떨어져서 전략적인 요소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해전 역시 단순히 전함만 뽑으면서 정찰기를 하나 돌리면 더 이상 섞을 유닛이 없습니다.

 

그나마 변수를 만들 수 있는 것이 그리폰/드래곤인데

이들은 최종 테크에 성기사/오우거 마법사의 3배가 넘는 자원을 먹으면서

전면전, 유격전 모두 나사빠진 성능을 보여주는 녀석들이라 쓰기가 어렵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녀석들의 존재 의의는 캠페인에서 유저에게 주는 시련 정도입니다.

 

게임 플레이의 쾌적함도 문제인데 컨트롤도 굉장히 불편한 게임에서 유닛들의 인공지능이 너무나 떨어집니다.

근접 유닛들이 난전시 제 자리에서 멀뚱멀뚱 서있는 모습은 혈압을 올리게 만듭니다.

이게 컴퓨터의 말 그대로 컴퓨터같은 마법 컨트롤과 합쳐지면 게임을 상당히 짜증나게 만듭니다.

 

총평을 하면 블리자드 전략 시뮬레이션의 밑바탕이 되는 작품이며 세계관을 높은 완성도로 정립시켰지만

단순히 이 게임만 때놓고 보았을 때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으로서는 장점보다 단점이 피부에 많이 와닿는 물건입니다.

여기서 기틀을 세운 블리자드 전략 시뮬레이션은 스타크래프트에 가서 꽃 피우게 됩니다..

 

다만 저 단점이 게임을 재미없게 만들지는 않다는 것이 신기한 점입니다.

정통적인 전략 시뮬레이션보다는 매 캠페인마다 새로 추가된 유닛을 바탕으로

주어진 상황을 타개하는 '정답'을 찾는 퍼즐 게임적인 면이 상당히 강하게 녹아있고 이 게임의 재미는 여기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커스텀 게임보다는 캠페인이 즐기는 것이 게임의 핵심이 됩니다.

단, 인간과 오크 쪽 캠페인의 구성이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사실상 캠페인이 하나여서 당시 손해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5.

워크래프트 세계관에서 가장 '너덜너덜한' 캐릭터로 저는 오그림 둠해머를 꼽습니다.

수많은 설정 변경과 그를 위한 설정 추가로 캐릭터 자체가 완전히 걸레짝이 되었죠.

 

사실 저는 2 시절에 둠해머가 그 자체로 완성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투에 나가서는 후퇴를 모르는 광전사이지만 동시에 전투 전에는 영악한 지휘관이고

필요하다면 비열한 수법도 마다하지 않는 그는 악역으로서 이미 충분한 카리스마를 지녔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블리자드는 모든 아군은 선인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잡혔고

이를 위해서 오그림 둠해머는 명예의 화신으로 변신하였습니다.

 

블리자드의 스토리 텔링 능력이 쇠퇴하고 있다는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오그림 둠해머는 그 자체로 상징성이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