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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의 영역/애니메이션-영화

우르세이 야츠라(2002)와 우르세이 야츠라: 완전판(1988)

 

 우르세이 야츠라가 리메이크된다는 소식을 듣고서 처음에는 걱정부터 들었습니다. 저보다도 나이가 많은 그 옛날 작품을 이제 와서 리메이크해서 어쩌겠냐는 생각부터 들었거든요. '봉신연의' 같이 원작 팬들의 복장이 터지는 리메이크도 있었고요. 그런데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다른 작품에 비해서 그나마 조건이 낫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당장 제가 애니메이션 열심히 볼 시기만 해도 우르세이 야츠라의 이야기 구도를 그대로 가져온 'To Love 트러블' 같은 작품이 아직도 연재될 정도로 아직까지도 영향이 강하게 남아있는 고전이니 아무래도 다시 그려내기 좀 더 수월하겠죠. 그렇게 기대 반, 우려 반으로 본 작품에 대한 감상은 '생각보다 괜찮았다.'입니다. 태생적인 한계 때문에 대박이라고까지는 말 못 하겠지만 이 정도면 할 만큼 한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원작 우르세이 야츠라의 정체성이 뭐냐고 묻는다면 저는 '맛있는 잡탕찌게'라고 말하겠습니다. 작게는 아타루의 집부터, 넓게는 대우주를 배경으로 온갖 사건이 일어나는, 말 그대로 무엇이든지 가능한 이야기이고 그 자체가 정체성입니다. 하지만 2022년 리메이크에서는 그 정체성의 상당 부분을 포기하였습니다. 아마 200화를 넘게 사용할 수 있는 구 TV 애니메이션에 비해서 분량의 제약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제약 아래에서 원작의 모든 것을 재현하겠다는 욕심을 버린 결과, 2022년 리메이크 우르세이 야츠라는 라무와 아타루의 사랑 이야기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 결과 이야기의 전개가 빨라지고 밀도가 올라간 점은 반가웠지만 두 사람의 사랑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인물들, 특히 우주 파트 등장인물들인 텐, 벤텐, 오유키, 쿠라마 등등은 비중을 거의 상실했습니다. 그나마 라무와 아타루와 많이 얽힌 란과 레이 정도만 비중을 지키는 데 성공하였죠. 그래도 오리지널 에피소드를 남발하다 결국 완주에 실패한 구 TV 애니메이션보다는 이쪽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에서 제일 만족스러웠던 것은 우르세이 야츠라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고 또 기대하였던 '그대를 기다려도...' 에피소드를 잘 만들어주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 에피소드야 말로 라무가 진정한 작품의 여주인공으로 다시 태어나는 에피소드라고 생각해서 정말 좋아하거든요. 라무가 예전에 비해서 다양한 옷을 입고, 그 옷들이 전체적으로 굉장히 세련되었다는 것도 저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반대로 제일 아쉬웠던 것은 대단원을 장식하는 '보이 밋츠 걸'이 4개나 되는 에피소드를 투자하였는데도 뭔가 박력이 부족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보이 밋츠 걸' 이야기를 하려면 내용상으로 완전히 일치하는 5번째 극장판 '우르세이 야츠라: 완전판'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극장판이 85분이었니 4화를 썼으면 분량이 부족한 것은 아니거든요. 저는 두 작품을 비교하면 극장판 쪽의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일단 그림체가 차이가 나는데 이 부분은 보는 사람의 취향에 갈리겠지만 저는 구 극장판의 라무가 좀 더 무거운 색감에 나이가 들어 보이는 이미지라서 여자로서의 슬픔을 표현할 때 더 와닿는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구 극장판에서만 존재하는 라무가 숲을 비행하며 눈물을 뿌리는 장면은 리메이크에는 없는 명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에 반해 리메이크의 라무는 여자라기보다는 소녀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좀 가볍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리메이크 애니메이션의 태생적인 한계인데 꼭 필요하지 않은 에피소드들을 쳐낸 결과, 쌓아놓은 감정선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벤텐이 기억상실 장치를 가동하려는 라무에게 자기는 지구인들이 마음에 들었다고 화를 내는 장면이 있는데 리메이크 애니메이션에서 벤텐은 지구인과 거의 접점이 없어서 이 말에 설득력이 없습니다. 라무의 분노는 자신은 아타루가 자신을 배신하고 다른 여자에 가려고 할 때마다, 비록 아타루를 전기로 지지긴 하더라도 언젠가는 아타루가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수없이 용서했음에도 불구하고 반대 상황에서 아타루는 자신을 믿어주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분노인데 리메이크에서는 아타루의 행동이 상당히 순화되거나 삭제되어서 이 분노가 불합리하다는 느낌입니다. 이성적으로는 자신의 가짜에 아타루가 속아서 한 말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지만, 반대 상황에서 자신은 계속 용서했는데 어떻게 한 번으로 그럴 수 있냐는 생각에 감정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거든요.

 

 다시 한번 요약하면 장편인 원작을 나름 잘 압축한 애니메이션이긴 한데, 장편만이 가지는 감정선을 다 살릴 수는 없어서 뭔가 아쉬운 장면이 없진 않다였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잘 만든 리메이크 애니메이션으로 손꼽을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옛날 작품 다시 만들면 누가 만들까 생각했는데 제가 즐겁게 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