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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의 영역/애니메이션-영화

천공의 성 라퓨타(1986)

 다 보고 나서 감상은 ", 이건 정말 멋진 작품이다." 였습니다. 굳이 다른 작품과 비교하면 미래소년 코난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를 섞은 느낌이지만 그보다 그냥 감탄이 나오는 작품이었습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지 못해서 좀 성급한 감은 있지만 모노노케 히메이웃집 토토로처럼 급이 다르다고 느낀 작품이라 걸작이라 부르기에는 뭔가 하나씩 아쉬운 스튜디오 지브리의 2000년대 이후 작품들을 보다 보면 하야오 감독은 '모노노케 히메'를 마지막으로 첫 번째 은퇴하기 전 자신의 정수를 다 쏟아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 작품은 먼 옛날 세계를 지배한 공중 왕국 라퓨타 왕족의 후손으로 비행석을 가지고 있는 소녀 시타를 중심으로 라퓨타를 되살려 다시 한번 세계를 지배하려는 무스카, 라퓨타의 보물을 노리는 해적 도라 일당, 그리고 시타와 사랑에 빠진 소년 파즈의 드넓은 창공과 고대의 유적을 배경으로 하는 신비로운 모험과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기계장치를 보면 스팀펑크 장르로도 넣을 수 있을 것 같고, 중반부부터 함께 행동하는 도라 일당과 그들의 배를 보면 전형적인 해적 로망스로 분류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보물을 좋아해서 어떤 모험이든 하는 겁이 없는 존재이면서 입이 험해도 동료를 아끼고 근본은 나쁘지 않은 게 전형적인 낭만주의 시절 해적이죠. 바다가 하늘로 바뀌었을 뿐 딱 도라 일당을 묘사하는 문장입니다. 거기에 당시에 붐이었던 신비한 고대문명까지 섞은 작품으로 보이네요.

 

 뭐가 좋았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것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버릴 게 없다는 말이 정확한 거 같습니다.

 시각적인 요소를 들자면 독특하면서 매력적인 탄광 마을의 풍경에서 시작해서 구불구불한 지하에서의 도주와 드넓은 창공을 배경으로 한 구름 속 추격전, 마지막에 자연에 뒤덮인 고대 유적까지 이어집니다. 무대가 되는 배경이 전환될 때마다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면서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캐릭터를 보아도 처음부터 끝까지 할매, 멋져요.’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도라가 정말 매력적입니다. 해적단의 두목답게 뱃심이 두둑한 것은 기본이고, 경험을 바탕으로 한 예리한 통찰력이 참 매력적입니다. 이런 캐릭터는 사실은 좋은 사람인걸 보여주려다가 지나치게 선인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은데 선을 참 잘 지킨 것 같습니다. 시타를 데려가는 것도 꿍꿍이가 있었고, 보물을 위해서 파즈에게 위험한 역할을 떠넘기는 것도 서슴지 않았죠.

 

 그뿐 아니라 메카를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눈이 호강인 작품이었습니다. 최초의 비행선부터 시작해서 포격하는 장갑열차, 비행석에 반응해 눈을 뜬 로보트가 보여주는 파괴적인 힘, 박력 있는 비행 전함과 어떻게 저 인원이 거주하는지 궁금할 정도로 좁디좁으면서도 있을 건 다 있는 해적선까지 쉴 새 없이 볼거리가 나옵니다.

 

 거기에 단순히 좋은 요소들만 많은 게 아니라 이런 것들을 잘 꿰어서 멋진 작품을 만들어냈습니다. 폭풍이 몰아치는 하늘을 넘어 도착한 자연과 하나가 된 고대 유적에 감탄하고 마음을 놓으려는 찰나에 갑자기 밀어닥친 군인들에 의해 자행되는 파괴에 약탈에 깊이 분노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자연을 장애물로밖에 보지 않는 무스카에게 화가 나면서도 그 어리석음에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자연주의적 시각이 참 잘 드러난 작품 같습니다.

 

 

 일단 제가 지브리 작품을 다 본 것은 아니지만 OST는 많이 들어보았는데 가장 좋은 곡을 고르라면 꼽는 게 세 개 있습니다. 하나가 '모노노케 히메'OST'모노노케 히메', 다른 하나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인생의 회전목마', 그리고 이 곡 '너를 태우고'입니다. 굳이 이 안에서도 순서를 정하라면 '인생의 회전목마'가 좀 처지긴 하지만 나머지 둘은 정말 고르기 힘들 것 같습니다. 오래전에 처음 들었을 때부터 듣자마자 빠져서 어디에서 나온 무슨 음악인지 찾아볼 정도의 곡이었으니까요.

 

 이제까지 지브리 작품 중에서 제일 잘 만든 작품이라고 하면 저는 모노노케 히메를 꼽는데 그와 견줄만한 작품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굳이 따지만 아직은 모노노케 히메의 손을 들어주고 싶네요. 다음 작품을 보고도 여전히 그런지 저도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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