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미의 영역/애니메이션-영화

고양이의 보은(2002)

'고양이의 보은' 은 2002년에 개봉한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만든 극장용 애니메이션입니다. 설정상 '귀를 기울이며'의 주인공 시즈쿠가 쓴 소설로 해당 작품에 나온 고양이 '문'과 '바론'이 등장하는 일종의 스핀오프입니다. 그래서 '귀를 기울이며' 에 이어서 이 작품을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보지 않았지만 기억에는 있는데 이유는 KAIST 입학 면접 때문입니다. 저는 성적도 과학고에서 모든 시험 1등을 찍었고, 입학 TEPS도 800을 넘겨서 당연히 인성 면접 대상자였고 그만큼 부담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면접관이 취미생활을 물었을 때 '애니메이션 감상'이라고 대답한 것은 그다지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었죠. 솔직할 필요가 없는 자리에서 굳이 많은 사람들, 특히 나이 많은 분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줄 수 있는 대답이었죠. 다행히 면접관께서는 별 반응없이 혹시 "학생은 '고양이의 보은'을 보러 갔나요?" 라고 묻고 별 이야기없이 면접은 끝났습니다.

 

작품의 내용을 요약하면 매일같이 늦잠에 지각이고, 좋아하는 남자는 다른 여자와 사귀는 등 하는 일마다 잘 풀리지 않는 여고생 하루는 어느날 하굣길에 선물을 물고 가는 고양이가 트럭에 치일 뻔한 것을 위험을 무릅쓰고 구합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고양이는 고양이 왕국의 왕자님이었고, 그 날부터 고양이들의 터무니없는 은혜갚기가 시작됩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마당에는 강아지풀과 개박하가 잔뜩 자라지 않나, 신발장 쥐가 가득 들어있지 않나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거기에 고양이왕은 하루가 마음에 드는지 고양이 왕국으로 데려와서 며느리로 맞이하고 싶다고 합니다. 이 지긋지긋한 은혜갚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하루와 고양이 바론, 문의 모험을 그리고 있습니다.

 

작품의 첫 인상은 좋지 못했습니다. 단순히 그림체가 바뀐게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으로 그림, 특히 인물 그림이 상당히 별로였어요. 이제까지 본 지브리 작품 중에서 가장 그림이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과는 정반대였어요. 최종 감상은 평작보다는 약간 나은 작품. 자꾸 하울과 비교하게 되는데 하울은 뛰어난 부분도 있지만 단점도 만만치 않게 커서 모두 합쳐서 평작이었다면 이 작품은 다 보고 나서 "뭐가 좋았어?" 라고 물으면 "다 괜찮았어." 라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네요. 별로 흠 잡을 데는 없는데 뭔가 꽂히는거도 없습니다. 진부하지는 않지만 다른 의미로 평범하다는 인상의 작품이었습니다. 러닝타임이 75분 밖에 되지 않은 작품인데 간결하다는 느낌보다 좀 아쉬운 느낌이 강합니다. 시간의 여유도 있는데 좀더 시간을 들여서 찬찬히 설명하고 이야기의 구멍을 메꾸어 주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어요. 무엇보다도 작중에서 고양이 왕국을 '자신의 시간을 살아갈 수 없는 녀석들이 가는 곳' 으로 지칭하는데 엔딩 스탭롤이 올라갈 때까지도 그 의미를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습니다. 무려 작품 캐치프라이즈에도 나왔는데도요. 유키가 다른 고양이들도 잘 모르는 바론의 고양이 사무소를 찾는 법을 어떻게 아는지도 맥락이 부족하고 고양이의 왕의 심리 상태도 좀 알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루가 마음에 들어서 흑심을 품은건지, 자존심과 체면 때문에 일을 친건지, 이런 내용을 30분 정도 분량만큼 덧붙였으면 훨씬 좋은 작품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재미는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한 번 더 보고 싶냐면 고개를 가로로 젓긴하지만요.

 

자막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사실 제가 자막에 좀 까다롭긴 합니다. 영어든, 일본어든 작품을 집중해서 보려고 하면 사실 필요없는데 좀 편하게 보려고 쓰는 것이거든요. 그래도 이 작품은 아예 대사에서 의미를 누락하거나 오역을 하는 수준이잖아요. 딱 봐도 쿠키인데 어떻게 붕어빵이에요. 이거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인데 자막을 끄는게 낫다고 판단될 수준이면 너무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