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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의 영역/애니메이션-영화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이브의 악몽(1993) - 크리스마스는 할로윈 마을에서?

 

보통 크리스마스의 친구라고 하면 다들 케빈을 떠올리지만

중학교 시절 영어 회화반에서 이 작품을 인상깊게 본 이후로 제 크리스마스는 언제나 이 영화와 함께 합니다.

올해도 창 밖에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레이니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침 식사 후에 따뜻한 이불 속에서 이 작품을 시청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크리스마스의 악몽이라고 하는데

이건 딱히 의미없는 오역이라고 생각해서 저는 크리스마스의 이브의 악몽이나 영어 원제로 부릅니다.

 

이 영화는 참으로 신비로운 영화입니다.

어두침침한 그레이 톤의 할로윈 마을에 공포 영화의 단골 소재들이 등장함에도

공포감이 들기는커녕 사랑스럽고 우습다는 느낌에 작품을 보는 내내 미소가 떠나지 않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감독이 관객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고 있으면 이런 묘기에 가까운 것이 가능하다고 감탄하게 됩니다. 

 

작품의 핵심은 '비틀기'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잭은 크리스마스에 감명을 받고 그것을 재현해서 모두에게 자신이 느낀 기분을 전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여기는 할로윈 마을, 오랜 세월 동안 남들을 깜짝 놀래키게 하는 일만을 전문적으로 해온 마을입니다.

평범한 문장 하나하나가 그들의 '상식'에 의해서 왜곡되고 곡해되는 과정을 보다보면 웃음보가 터집니다.

크리스마스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는 잭 자신조차 스스로는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근본적으로 비틀려있습니다.

선물로 쥐가죽 모자를 만는다는 녀석에게 박쥐가죽을 추천하는 잭의 모습이 이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와중에 마을 사람 모두는 사람들이 이걸 보고 좋아해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도 잭에게는 좋은 약이 되었을 것입니다.

같은 일을 오랫동안 반복하다 보면 때로는 자신이 하는 일의 진부하고 무가치해 보일 때가 있죠.

이럴 때 새로운 시도나 신선한 일탈을 통해 재충전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잭도 아이디어가 마구마구 솟아나온다고 하죠.

다만 산타클로스의 불만처럼 그 방식이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말려들게 하는건 아닌지 한 번 고려할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사건에 말려들어서 일생 최고로 스펙터클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시민들과 이브 밤에 비상 걸려서 대공포 사격까지 한 군인들에게 애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