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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의 영역/애니메이션-영화

2020 우주의 원더키디(1989) - 장점은 많지만 재미는 없다

 

 

 어렸을 적, 명절이 되면 기대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명절 특선 만화영화였습니다. 볼 작품이 넘쳐나는 요즘에야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평소에 애니메이션을 접할 기회가 드물던 저희 세대에게 명절마다 틀어주는 가지각색의 애니메이션은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오랜만에 그 기분이 생각이 나서 이번 명절에는 명절 특선 ‘2020 우주의 원더키디’를 전편 감상하였습니다. 원더키디는 일요일 날 오후 1, ‘전국 노래자랑이 끝나면 나오는 만화영화였습니다. ‘날아라 슈퍼보드달려라 하니’, ‘영심이같은 것들도 이 시간에 방영되었죠. 당시 어린이들에게는 평일 오후 6시 반과 함께 만화영화의 황금시간대 중 하나였습니다. 문제는 제가 학교 대표나 시 대표, 때로는 도 대표로서 수학 경시대회에 출전하는 일이 많았는데 그런 대회들이 보통 일요일에 열리기에 이 시간대의 방영되는 만화 영화들을 꾸준히 시청하는 것이 불가능하였습니다. 다른 작품들은 그래도 옴니버스 성향이 강해서 드문드문 보아도 큰 문제가 없었는데 이 작품, ‘2020 우주의 원더키디는 앞뒤 내용 자르고 보면 이야기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몇몇 장면 빼면 거의 기억에 남지 않은 작품이 되어서 이번 기회에 차근차근 보려고 결심하였습니다.

 

 애니메이션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2020년 인류는 본격적으로 우주 개발에 나서지만, 미지의 행성 UPO 근처를 지나는 우주선들이 전부 조난하는 일이 벌어지고, 이를 조사하러 나선 주인공인 아이켄의 아버지가 탄 독수리 호마저 조난하게 됩니다. 이에 우주 개발 기구는 태스크 포스를 조직하여 독수리 호의 승무원을 구조하려고 하고 아이켄은 자기 손으로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서 태스크 포스의 갤럭티카 호에 몰래 탑승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을 태운 갤럭티카 호도 알 수 없는 힘에 끌려가서 손쓸 새도 없이 조난하게 되고, 거기서 그들이 마주치게 된 것은 고도로 발달하여 기계문명과 그들의 노예가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이켄은 그들의 압제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해방하고, 아버지를 구출하기 위해서 싸우게 됩니다. 지금 보아도 상당히 탄탄한 스토리 라인입니다. 캐릭터의 움직임도 부드럽고, 적으로 등장하는 로봇들의 디자인도 하나하나 신경 써서 만들었습니다. 이런 장점 덕분에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솔직히 말해서 그다지 재미가 없었습니다. 일단 시놉시스가 저러니 전체적인 분위기도 어두운 편이고 액션 자체도 다수의 적을 피해 다니며 싸우는 잠입 액션에 가깝습니다. 이게 한 두 화 정도면 손에 땀을 쥐는 상황이었겠지만 작품 내내 이러니 좀 답답합니다. 마지막 싸움도 보스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본거지를 공략하는 소위 빈집털이식이고, 그마저도 최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후반 내내 아군을 괴롭히던 비비라의 자살 공격이었습니다. 특별한 훈련을 받은 적도 없는 아이켄이 맹활약하는 것이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걸 과연 아동 팬들이 좋아할 만한 작품인지 생각하면 좀 부정적으로 생각이 드네요. 반대로 이걸 성인 취향의 SF 물로 보기에는 등장인물들 행동의 개연성이 부족하고, 캐릭터들은 전형적인 아동만화 스타일입니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탐사대원이면서 아무거나 건드리다가 문제를 일으키는 데보 갑판장이라던가 성인 팬들이 보기에는 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좀 많습니다. , 얘들 보기에는 어렵고 답답한데 어른이 보기에는 짜임새가 아쉬운 물건이라는 게 제 감상입니다. 위와는 관계없지만, 은근히 거슬렸던 게 몇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등장인물들의 머리카락 색이 때때로 검은색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캐릭터가 전부 흑발이었다가 이름이 전부 외국 이름인데 전부 흑발이면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캐릭터 디자인을 바뀐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도중에 검은 머리는 수정 과정에서 누락된 장면이고요. 그런데 바뀐 머리카락이 대부분 적발이라서 반대로 좀 어색하더군요. 사실 적발은 서양에서도 그렇게 흔하지 않죠. 또 하나는 인물들의 입이 움직이는데 상당히 어색하다는 점입니다. 대사와 캐릭터의 입 모양이 일치하지 않거나, 몇몇 장면에서는 입술이 움직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제작 당시에는 우리나라가 기본적인 기술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서 세부적인 완성도가 아쉬운 부분이 나오네요.

 

 요약하면 추억의 작품이긴 하지만 지금 봐도 재미있는 작품이라고 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후속작을 암시하는 장면을 넣으면서 작품이 마무리되었는데 아직까지도 관련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을 보면 방영 당시에도 기대한 만큼 인기를 끌지 못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적어도 저는 다시 한번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그래도 여는 노래는 오랜만에 다시 들어도 참 마음에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