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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의 영역/프로야구

KBO를 돌아보며(3) - 관중석의 미녀 열풍

제 1회 WBC, 그리고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선전으로 야구에 대한 관심이 커지던 시절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야구장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TV와 컴퓨터를 통해서 야구를 보았습니다.

KBO의 오랜 숙원 사업이었던 전 경기 중계가 마침내 실현된 시절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한 시기에 야구장에 아무도 예상치 못한 유행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관중석의 미녀 열풍이었습니다.

원래 야구 중계에서 이닝이 끝나고 공수를 교대하면 응원하는 관중들을 비추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신이 나서 응원하는 아저씨나 오손도손 모여앉아 보는 가족 관람객 대신

아리따운 미녀들이 카메라에 잡히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다들 상당히 신기해하였습니다.

비록 베이징 이후에 젊은 팬층, 그리고 여성 팬층이 유입되고 있다고는 하여도

야구는 남성팬, 그 중에서도 나이 좀 먹은 아저씨 팬이 많은 스포츠라는 인식이 강한 스포츠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라 빈번한 일어나면서,

당시 인터넷의 트렌드였던 'OO의 미녀', '미녀 OO'와 결부되면서 상당한 폭발력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 열풍은 대단하였습니다.

어지간한 스포츠 신문이나 잡지에서는 한 번 이상 특집 기사로 다룰 정도였고

구단 팬덤에서는 우리 여성 팬이 더 이쁘다는 것으로 자존심 싸움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이러한 미녀들을 모아놓는 인터넷 사이트들도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그 붐은 그다지 명예스럽지 못하게 끝났습니다.

그러한 열풍이 한창이던 시기에 한 편의 고발 기사가 떴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은 이 모든게 짜고 보여주는 쇼라는 것이었습니다.

미녀 관중의 정체는 구단에서 돈을 주고 고용한 급이 낮은 모델이었고,

케이블 방송은 단지 약속된 시간, 약속된 장소를 카메라로 비추는 것이었습니다.

그걸로 열풍은 삽시간에 사그라들었고 한동안 다른 스포츠로부터 비아냥을 들어야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썩 괜찮은 마케팅이었던 것 같습니다.

2000년 대 중반은 야구장에 가면 90% 이상이 남자였던 시기였고,

몇몇 구단은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적극적으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왜 여성 관객이 중요하냐는 질문에는 당시 꽤나 노골적인 기사가 있었죠.

한 명의 남성을 야구팬으로 끌어들이면 1명으로 끝난다.

하지만 한 명의 여성을 야구팬으로 끌어들리면 자식들은 자동적으로 따라온다.

 

이러한 상황에서 야구장의 미녀들은 야구장을 더 이상 남성들의 전유물이 아니게 하였습니다.

아름다운 여자들이 도도하게 혼자서 혹은 여자들끼리 야구를 관람하는 장면이 전파를 타는 것은

그 어떤 광고나 선전보다도 여성을 당당하고 부담없이 야구장을 찾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와, 저런 여자들도 야구보러 가네. 나도 여자라고 야구장가는 걸 망설일 이유가 없잖아?'

 

더구나 일부 외모에 자신있는 여자들은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는 것을 꿈꾸며 야구장을 찾으면서 선순환을 이끌어내기도 하였습니다.

 

남성 관객의 반응이요? 두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야구장에 가면 짝이 없는 미녀가 있다는 소문은

많은 남성들을 '혹시나..?'라는 판타지와 함께 야구장으로 꾀어내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실제 스포츠 경기장에서는 응원을 위해 어깨동무를 한다던가 극적인 순간에 서로 얼싸앉는다던게

생각보다 관중들끼리 신체 접촉을 기대할만한 일이 많으니까요.

 

전에 K리그와 KBO리그의 격차가 어디서 생겼는지 이야기를 하면서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KBO리그가 훨씬 돈 냄새에 민감했다. 단지 그 뿐이라고.

비록 정정당당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지를 남들보다 더 고민하고 차근차근 실행하였다는 점에서 평가해주고 싶은 일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