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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의 영역/프로야구

KBO를 돌아보며 (2) - 프로야구가 멸망할 줄 알았던 시절

때는 바야흐로 2002년이었습니다.

드컵의 붉은 물결은 프로야구 흥행에 직격타를 먹였습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축구 이야기를 하였고,
야구 특히 MLB가 아닌 한국 프로야구 팬인 저 같은 사람은 별종 취급을 당하던 시기였습니다.

월드컵이 끝난 후에도 이어진 'K리그 살리기 운동'은

빠른 속도로 프로야구를 공중파 방송에서 퇴출시켰습니다.

진짜 야구 중계 한 번 보기 힘든 시기였습니다.

 

2003년 이승엽 선수의 아시아 홈런왕을 향한 레이스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야구 팬은 다시 한 번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야구장에는 잠자리채를 가진 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삼성 경기 한정이지만 공중파 중계가 다시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이어진 아테네 올림픽 예선은 그 싹을 확실히 밟아버렸습니다.
월드컵에서 4강까지 간 축구 vs 대만에게 져서 올림픽 예선에서 떨어진 야구, 얼마나 좋은 구도입니까
축구 팬들, 그리고 해외 야구 팬들에게 훌륭한 안주거리만 제공한 채

야구는 다시 관심에서 멀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가장 괴로웠던 것은 2004년이었습니다.
2003년에 그나마 국내 야구를 볼 수 있게 해주었던 영웅인 이승엽 선수가 일본으로 가 버리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그를 쫓아 NPB로 옮겨가 버렸습니다.
신규 야구 팬들은 이승엽 선수 나오는 NPB를 보지, 한국 프로야구를 보지 않았고
SBS는 일본 프로야구를 생방송으로, 한국 프로야구는 녹화 방송으로 편성하였습니다.
프로야구 중계를 바라는 입장에서는 최고의 아군이 최악의 적이 되어버린 격이었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버틸 수 있었습니다.

월드컵 열풍을 탔던 K리그 살리기 프로젝트가 지지부진하면서 동 시간대 라이벌이 하나 줄었고

이승엽이 첫 해 기대만큼의 성적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한 두 해만 버티면 된다는 기대가 있었죠,
여기서 더 떨어질 곳은 없다는 자조적인 위안이 팬들에게 도는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그마저 앗아가는 사건이 벌어졌죠.

바로 2004년 한국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태였습니다.

일단 명단을 보시죠.


저 리스트 뜬 날 프로야구 팬들은 다 함께 "축!! 한국 프로야구 멸망"을 외쳤죠.
당시는 아들이 군대 안 간 죄로

제 1당 후보가 2번 연속 대통령 선거에서 물 먹던 시기였기에 충격은 정말 컸습니다.

저 시기가 얼마나 암울했냐면
인터넷 팬 사이트에서 프로야구 5년을 버틸 수 있을까라는 말이 진지하게 나오던 시절이었고
일부 구단에서 팀 해체를 추진한다, 프로야구가 6개 구단이 된다라는 말이 현실성을 가지던 시절이었습니다.

저도 그 시절에는 정말로 한국 프로야구는 없어질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어땠냐고요? 보시는 바와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KBO에서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스트라이크 존과 공인구를 모두 국제 규격으로 통일시키는 등 역전극을 준비하였고
제 1회 WBC와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대박으로 프로야구는 한 방에 기사회생하였습니다.

얼빠면 어떻습니까
4,5년 간 신규 팬들이 들어오지 않아서 프로야구는 아저씨들이나 보는거라는 말이 정설인 시절에
무려 신규 팬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가 올드 부심 부리는 사람들을 보면 그 시절을 생각하라고 하고 싶습니다.

제가 아직도 자신의 아집을 앞세워 함부로 멸망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곱게 보지 않는 이유입니다.

진짜로 망한다는게 어떤 느낌인지도 모르면서 함부로 그 말을 입에 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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