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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의 영역/애니메이션-영화

이 추하고도 아름다운 세계(2004)

1.

'이 추하고도 아름다운 세계' 는 2004년 가이낙스에서 제작한 12화로 구성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입니다.

대절멸을 일으켜 지구의 생태계를 리셋하기 위해서 내려온 소녀와 부모에게 버림받은 소년의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나름 가이낙스 20주년 기념 작품의 스타트를 끊은 의미있는 작품이어야 하지만....

 

2.

저에게 이 작품은 다른 의미로 의미가 있는 작품입니다.

보통 어떤 사람이 일본 애니메이션에 입문하게 되면 보통 명작 위주로 추천받아서 보게 됩니다.

저 같은 경우 지브리 애니메이션이나 신세기 에반게리온 등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에 입문하게 되었지요.

그러다보면 아무래도 '일본 애니메이션은 대단해!' 라는 생각을 품고 이게 과해지면 일본에 대한 과한 동경을 품게 되지요.

다행히 저는 그 단계를 빠르게 졸업하였는데 변명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환상을 박살낸 작품들이 있었던 덕분이었죠.

 

'일본 애니메이션이라고 다 대단한게 아니구나.'를 넘어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단한 작품도 있는거구나.' 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만든 세 작품

'이 추하고도 아름다운 세계', '시스터 프린세스', 그리고 '어둠과 모자와 책의 여행자'.

대학교에 들어가서마자 본 세 작품이 저거였고 아직도 저 셋을 삼망작(三亡作)이라고 부르며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셋 중에서 가장 나은 작품이 이 작품이긴 하지만 가이낙스 이름에 건 기대가 컸기에 사실 효과는 가장 치명적이었죠.

 

3.

그러면 이 작품이 뭐가 문제였냐면 일단 기획부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조기종영 이야기가 없으니 처음부터 12화라는 이야기인데 그 분량에 두 명의 남주인공과 세 명의 여주인공은 벌써 빡빡합니다.

거기에 러브 코미디와 별개로 진지한 스토리 라인을 만들고 거기에 변신 히어로물까지 넣으려는 무리수를 두었지요.

그렇다고 제작진이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했냐고 하면 그것도 아닌게 여주인공 두 명의 합류에 4화를 사용했습니다.

3화가 그 자체로는 나쁘지는 않았지만 12화 중 하나를 저렇게 느긋하게 썼다는게 문제지요.

 

결국 밀린 방학숙제를 몰아서하는 초등학생처럼 후반부에 밀린 전개를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할 수 밖에 없었고

진지한 스토리를 뒷받침해줄 드라마가 부실하니 같이 본 룸메이트의 평대로 '싸대기 한 대 맞았다고 세계 멸망시키려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오프닝에서도 강조되었고 1화에서도 선보였던 변신 히어로 액션은 7화에 한 번 더 나오고 끝입니다.

이야기의 하이라이트인 후반부에 저 변신 히어로 액션은 등장도 하지 못했습니다. 대체 왜 넣었나 알 수 없는 수준이지요.

무리한 기획과 분량 조절 실패에서 기인한 총체적 난국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초반부는 나쁘지 않았어요. 다시 보면서 6화까지는 기억한거에 비해서 멀쩡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래도 넷플릭스에서 '건어물 여동생 우마루짱' 보려다가 유치해서 1화만에 때려쳤다는걸 생각하면 그것보다는 낫다고 봐야하나요.

아예 오프닝을 기억에서 지우고 마호로매틱 제작진이 만든 마호로매틱 비스무리한 무언가로 생각하고 봤으면 오히려 나았을 수도 있네요.

 

참고로 다른 두 작품에 대한 제 평가는

시스터 프린세스: 25분 내내 다양한 종류의 오빠를 듣다보니 정신병이 올 것 같다. 4화만에 하차.

어둠과 모자와 책의 여행자: 차라리 포르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어도 이것보다는 잘 만들었을 것 같다. 3화만에 하차.

 

4.

사실 이걸 요즘 다시 보게 된 이유가 아는 후배가 운영하는 FTP 서버에 이 작품이 올라와서였죠.

도대체 이제는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일부러 구하려고 하지 않으면 구하기도 힘든 작품을 왜 올렸냐고 물어보니 오프닝에 낚였답니다.

 

그건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타카하시 요코, 즉 에반게리온 오프닝 부른 가수가 부른 곡인데 애니메이션에서 유일하게 건진 소득입니다.

오프닝 곡과 오프닝 영상 덕분에 기대치가 엄청 올라간 상태여서 실망이 더 컸던 것도 있으니까요.

제가 위에 언급한 삼망작의 또 다른 공통점 중 하나가 오프닝 곡이 정말 좋다는 것입니다.

 

호리의 유이가 부른 '시스터 프린세스'의 오프닝, Love Destiny. 

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수학경시반 직속 후배가 저걸 노래방에서 불러서 호기심에 한 번 보게 되었죠.

 

'어둠과 모자와 책의 여행자' 의 오프닝인 '눈동자 속의 미궁'.

이 작품은 오프닝 곡과 그림체에 끌려서 보게 되었는데 그냥 제가 견디질 못하겠다는게 정확하네요.

 

5.

애니메이션 12화를 보고서 작품 세 개의 리뷰를 할 수 있으니 이득이 아니냐는 생각으로 건드렸는데

이야기가 진지해지기 시작하는 후반부에 접어드니 시간이 안 가서 고생했습니다.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걸로 검증된 작품은 함부러 건드는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