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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의 영역/애니메이션-영화

나일 강의 죽음(2022) - 데이트, 그리고 독서

 지난 2월, 수족관에서의 데이트가 있던 다음 주에 정석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관 데이트가 이어졌습니다. 볼만한 대작들이 없는 쉬어가는 기간이라서 '해적: 도깨비 깃발'과 이 작품 중에서 고민하였는데 그래도 로맨스가 있는 이 작품이 나아 보이더군요. 어린 시절 서점에서 서서 읽었던 애거시 크리스티나의 소설을 떠올리면서 데이트를 즐겼습니다. 이 글은 애니메이션-영화 카테고리니 데이트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영화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영화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오리엔탈 특급 살인 사건' 이 영화화되었다는 말을 듣고 한 번 가볼까 생각이 들기는 하였지만 코로나 시국이라서 포기했었죠. 작품 내에서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에 대한 암시가 있는 것을 보니 시리즈로 만들려는 것 같네요. 다만 이 작품이 원작의 명성에 어울리는 작품인가 하면 그렇지 못한 거 같네요. 일단 영화는 처음 1시간 동안 상당히 지루합니다. 이집트 풍경이 보여주는 미장센은 괜찮지만 그것에 기대어서 간신히 버텨가는 느낌. 원작 소설도 초중반 전개가 살짝 지루한 부분이 없지 않은데 영화에서 여러 가지 손을 대면서 약점이 더 커졌다는 느낌입니다. 사실 이 작품은 단순히 소설을 영상화했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상당히 대담하게 손을 댔습니다. 문제는 최소한 저에게는 이런 시도가 신선하게 느껴지기보다는 이렇게까지 바꿀 것이면 '굳이 이 작품이 원작의 제목을 달고 나올 이유가 있는가?'라는 의문만 들게 하였다는 것이지요. 특히 푸와르가 푸와르스럽지 않다는 게 가장 거북하더군요. 인간적이고 정열적인 모습을 지나치게 강조해서 회색의 뇌세포라는 별명이 그다지 떠오르지 않더군요. 리넷도 리넷스럽지 않고, 재클린과 로잘리만이 마음에 들더군요. 베스너를 윈들셤과 하나로 합친 시도는 괜찮다고 보이는데 코닐리아와 퍼거슨을 전부 삭제하고 레이스 대령에 리체티까지 없앤 결과 영화가 너무나도 비어버렸습니다. 리넷-사이먼-재클린과 직접적인 관계없는 인물들을 전부 쳐낸 만큼 이들에게 초점을 맞춰서 빠른 전개로 나갔으면 장점이 될 수도 있었는데 원작의 느린 템포를 따라가다 보니 단점만이 눈에 띄네요. 다만 리넷의 사망 이후는 몰입감도 괜찮고 평작 이상의 작품이었습니다. 인물들을 압축한 장점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마지막 장면도 괜찮았습니다. 요약하면 그래도 평작은 되는 작품?

 

 영화를 보고 나서 제 머릿속 작품과 차이가 나는 부분이 많아서 바로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오랜만에 보니 어디가 원작대로 가고, 어디가 각색한 부분인지 기억이 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일요일 오후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고 나서 이렇게 감상문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걸 독서로 올려야 할지, 영화로 올려야 할지 좀 고민하였습니다. 그나저나 좀 오래전에 번역된 책이라고 해도 번역이 거의 끔찍한 수준이네요. 오역은 아닌 것 같지만 너무나 심한 번역투가 독서의 즐거움을 방해하였습니다. 몇몇 문장은 원문이 무엇인지 상상하고 그걸로 읽는 수준이었습니다. 책값이 올랐다고 해도 제대로 된 번역을 즐길 수 있는 요즘이 훨씬 나은 것 같습니다. 덤으로 최근 책장 공간 때문에 e-book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이 책은 제가 리디북스에서 처음으로 구입한 소설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