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미의 영역/애니메이션-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2022)

 이 작품은 2주 전에 보고 왔습니다. 연애가 이번인 처음인 저에게 있어서 데이트 코스 구상은 언제나 고역이었습니다. 어디서 만나서, 무엇을 먹고, 무엇을 한다. 누구에게는 간단한 일이지만 경험이 없는 저에게 있어서는 이게 고역이더군요. 성별이 같은 친구들과 놀러 다닐 때는 적당히 뭐 하자만 정하면 나머지는 근처에서 대충 하면 되는데 말입니다. 덕분에 대부분의 데이트 코스는 여성 분이 정하면 저는 식당만 정하는 수준이었고, 솔직히 남자로서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MCU 영화가 나올 때 솔직히 쾌재를 불렀습니다. 가서! 점심 먹고! 영화 보고! 끝난 후에는 팝콘으로 배가 반쯤 차 있을 테니 카페에서 영화 이야기하면서 간단히 커피 한 잔! 이러면 누구도 흠잡을 데 없는 모범적인 데이트 코스 아닙니까.

 

 갤러리아 백화점에서 멕시코 음식으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평소에는 먹지 않는 수준...을 넘어서 이제까지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곳에서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을 먹는 것은 그래도 즐겁네요. 음식은 그냥 어쩌다 한 번은 먹어도 괜찮은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국물이 있는 음식이 더 반갑네요. 식사 후 카페에서 잡담을 하다가 팝콘과 음료수를 사서 들어갔습니다. 전에 스파이더맨을 볼 때만 해도 영화관 안에서 음식물 취식이 금지였는데 코로나가 끝나간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영화는 적당히 괜찮았습니다. 인터넷에 악평이 많이 보여서 걱정을 좀 했었는데 그 정도의 작품은 절대로 없습니다. 적어도 상영 시간 도중 핸드폰이나 보고 싶은 구간은 없더군요. 다만 장르적으로 불만을 가질 사람들은 좀 있을 것 같더군요. 스파이더맨이 슈퍼 히어로의 탈을 쓴 틴에이지 드라마였다면, 이 작품은 공포물의 문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화려한 액션을 기대한 사람들을 만족시킬 만한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영화는 스칼렛 위치의 폭주와 이를 막으려고 동분서주하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다만 주인공은 닥터가 아니라 스칼렛 위치에 가깝다고 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 악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뻔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피해자이고 내가 하는 악은 사실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필요로 합니다. 스칼렛 위치는 작중 계속 존재할 수 있었던 자신의 자식들을 들먹입니다. 그들이 불쌍하다고 합니다. 그 명분 아래, 그녀는 다른 사람을 해치는데 거리낌이 없으며 그럼에도 스스로를 '이성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피해자 행세는 사람을 점점 취하게 만들어서 그녀는 몇 번이나 멈출 수 있는 순간이 있음에도 폭주를 거듭하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자식들을 위해서' 멀티버스의 지배자가 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얄팍한 자기 기만이 벗겨진 순간 그녀의 정신은 자신이 저지른 죄악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그 사원처럼 와르르 무너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 웡이 스칼렛 위치에 굴복하는 모습을 제외하면 영화 자체에는 만족했습니다. 엑스맨의 빡빡이 아저씨 나왔을 때는 조용히 환호했고요. 같이 간 여성 분이 공포물에 약하다고 해서 보는 도중 걱정을 좀 했는데 다행히 이 정도는 괜찮다고 하시더라고요. 무엇보다 영화보는 도중 제 어깨에 기대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영화 보고 나서 근처 호수 공원을 산책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배가 꺼져서 저녁까지 먹고 헤어졌습니다. 즐거운 데이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