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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의 영역/애니메이션-영화

날아라 슈퍼보드 시즌1-3(1990)

 머지않아 추석이라서 스스로 추석 특선 애니메이션 상영회를 열어보았습니다. ‘날아라 슈퍼보드’, 허영만 화백이 그린 동명의 만화책을 원작으로 하여 KBS에서 방영한 애니메이션입니다. 최고 30%가 넘는 시청률을 자랑하면서 저희 세대라면 모를 리 없는 말 그대로 국민 애니메이션이란 칭호가 어울리는 작품입니다. 양치질에서 유래한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라는 주문을 따라 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지요. 시즌 5까지 존재하지만 1990년대 초반에 처음 방영한 시즌1-3과는 달리 시즌 41998년에 시즌 52001년에 방영했습니다. 덕분에 우리 세대에서 날아라 슈퍼보드라고 하면 아무래도 시즌 1-3, 그중에서도 시즌 2를 떠올릴 가능성이 큽니다. 일요일 오후 1시에 다른 국산 애니메이션과 번갈아 가면서 방영해주었기에 접할 기회가 많았던 것도 있고요.

 

 이 작품은 중국 4대 기서 중 하나인 서유기를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미스터 손이란 예명을 쓰면서 여의봉과 근두운 대신에 쌍절곤과 슈퍼보드를 타고 날아다니는 손오공과 바주카포를 쓰는 저팔계, 백마 대신 사륜 오프로드 차량을 몰고 다니는 삼장법사가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가장 독창적인 캐릭터는 사오정인데 뽁뽁이 망치와 독나비를 사용하는 등 원작의 모습은 흔적도 없을 정도이지요. 그의 특징인 다른 사람의 말을 잘못 듣고 딴소리하는 컨셉으로 90년 대 말에 사오정 개그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작품성이야 이것저것 따져볼 게 많겠지만 국산 애니메이션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작품을 꼽으라면 저는 망설임 없이 이걸 꼽습니다.

 

 시즌 1은 단 2화로 구성되어있기에 선행방송이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내용도 삼장법사가 손오공, 사오정, 저팔계를 동료로 맞아들이는 이야기의 도입부이기도 하고요. 시즌 213화로 구성되어있으며 삼장법사 일행이 여행을 다니며 다양한 요괴를 무찌르고 쓰러진 요괴들을 봉인하는 내용입니다. 나무요괴, 철철대왕, 에어탱크, 진공마왕 무엇 하나 버리기 힘들 정도로 강력하고 매력적인 적들이었고 매화 짜임새도 굉장히 좋았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나무귀신과의 싸움만 하여도 유불리가 계속 바뀌면서 당시 어린이들이 손에 땀을 쥐고 보게 만들었죠. 교활한 나무귀신이 책략으로 선수를 취하는가 하면 미스터 손이 술법으로 어느새 우위에 서고, 미스터 손이 슈퍼보드와 쌍절곤으로 유리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유인책에 슈퍼보드가 묶여 간신히 목숨만 건져 도망치기도 합니다. 제가 소년만화를 볼 때마다 이러한 주고받음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데 정말로 잘 만든 작품입니다. 마지막에 나무귀신의 최후의 수단으로 모두가 쓰러질 때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사오정이 활약할 줄도 몰랐죠.

 

 또 하나의 장점을 들자면 손오공 외의 병풍이던 원작 서유기에 비해서 다른 캐릭터들의 비중도 올라갔는데 특히 손오공이 빠진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모두의 활약으로 세 마리의 마귀를 전부 쓰러뜨린 진공마왕 편이 대표적입니다. 삼장법사도 원작의 답답한 모습에 비해서 훨씬 받아들이기 편했습니다. 철철대왕 편에서 화려한 회피술은 끝내줬습니다. 어르신에게 지나치게 순종적인 모습이 있긴 하지만 저게 나온 1990년대 초반에 한국에서 나이 많은 건 말 그대로 벼슬이었고 혹여나 공중파에서 아동 대상 만화에서 노인에게 불손한 모습을 보였다가는 무사하지 못했을 터이니 그러려니 합니다. 다만 딱 하나 아쉬운 것은 방영 순서가 좀 이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개연성이 맞으려면 나무귀신 편이 철철대왕 편의 뒤에 나와야 하고(3번 만에 터지는 뽁뽁이와 부적에 대한 언급) 그 외에도 이제까지 상대한 요괴와 다르다는 말이 나오려면 나무귀신 편은 후반으로 돌려야 했습니다. 이 점은 좀 아쉽네요.

 

 시즌 3는 당시 어린 마음에도 시즌 2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특히 3화로 여행이 끝나고 일행이 해산한 후, 많은 시간이 흐른 후의 이야기가 시작하는데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하였습니다. 약장사가 된 저팔계와 원숭이 수준으로 지능이 퇴화한 미스터 손을 보고 당시 어린이 사이에서 난리가 났었죠. 그나마 여행의 끝이 그럴듯하기라도 했으면 모를까 마지막에 상대한 요괴가 시즌 2와 비교해서 너무나도 볼품없었거든요. 그리고 이번에 다시 보면서 느낀 것인데 확실히 전 시즌에 비해서 짜임새가 허술합니다. 적들의 매력이나 개성도 부족한데 전투 애니메이션도 퇴화하였고 비중도 미스터 손 원맨쇼에 가깝습니다. 사오정과 파링은 쌍라이트 형제의 관문에서 한 번 활약한 것을 빼면 작중 짐 덩어리에 가깝고 저팔계는 그나마도 없죠. 마지막 대마왕 후편은 당시에도 진짜 재미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명색이 대마왕인데 무적인 유리병 안에서 빔이나 쏘다가 병이 깨지니 총 들고 인질극 벌이는 모습이 너무 추했습니다. 차라리 앞에 나온 파괴의 마녀가 더 강하고 무서워 보였습니다.

 

 사실 허영만 화백의 원작을 따라갔다면 사오정이 타락해서 악행을 벌이다가 파링한테 난도질당한 후 자기가 소환한 괴물에 죽고, 파링은 저팔계와 결혼해서 개구리 자녀들을 대량으로 낳는 전개인데 이러면 도저히 아동용으로 공중파에서 방영할 수가 없어서 도중에 방향을 틀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닌 작품이 되어버린 것이 이 시즌 3인 것을 어느 정도 감안할 필요는 있습니다. 나무위키에서는 시즌 4,5와 양립할 수 없어서 이걸 정사가 아니라고 하던데 원작 만화책과 유사하게 진행되는 게 이쪽이라서 정통성은 사실 이쪽에 있다고 봐야 하는 게 문제긴 문제지요. 원작 만화는 조금 읽어보았는데 미스터 손이 밀가루로 만든 가짜 일행과 함께 투기장에 가던 부분만 기억이 나네요.

 

 시즌 4 이후는 사실 보지 못했습니다. 당시 수학 경시 활동을 하느라 늦게 돌아오곤 했거든요. 몇 화 정도만 지나가며 본 정도였습니다. 캐릭터의 디자인이 많이 달라졌지만, 시즌 2의 그 느낌을 잘 살려면서도 보다 세련되게 바꾸어 놓았더군요. 어디서는 인기가 없었다고 주장하는데 시즌 4가 가장 성공한 시즌이었습니다. 최고 시청률이 50%에 육박했으니까요. 제 세대도 그럭저럭 볼만하면서 제 동생 세대에서 제대로 인기를 끈 것 같더군요. 다만 시즌 5는 타겟을 시즌 4보다도 저연령으로 바뀌었다고 들었는데 대부분 전 시즌 시청자들을 쉽게 흡수할 수 있도록 연령대를 살짝 올리는 것이 보통이라는 걸 생각하면 실책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가장 시청률이 안 나온 시즌이기도 하고요. 물론 이것도 20% 가까이 나와서 시청률 때문에 명맥이 끊긴 작품은 아닙니다. 이것도 여유가 되면 볼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닌데 밀려 있는 작품 생각하면 지금 굳이 손을 댈 생각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