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람 사는 이야기/기행문

남산타워에 오르다

돌아다닌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휴가 동안 그동안 가보지 않은 곳을 돌아볼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방문할만한 명소를 추천해달라고 조언을 구했습니다. 내년부터는 서울 밖으로 거주지를 옮길 계획이라 서울 안이 좋을 것 같다는 조건을 붙여서요. 그리고 이렇게 물어보는 와중에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하였습니다. 그 사실이 무엇이냐면 서울 남산타워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정작 남산타워에 가본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저만 해도 명동역 근처라면 집에서 지하철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이지만 굳이 가보겠다고 마음먹은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남산타워로 목적지를 정했습니다. 제가 직접 가 볼 만한 곳인지 알아보겠다고요.

 

 도보로 올라갈까, 케이블카를 사용할까 고민은 좀 하였지만 남산 케이블카 자체도 일종의 명물 취급을 받고 있고 걸어서 가기에는 오늘 날씨가 꽤 쌀쌀하더군요.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서 명동역에서 나와서 좁은 오르막길을 올라가는데 두 가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나는 근처 건물이 전부 게스트하우스였던 것이었고, 또 하나는 계속 중국 영사관 가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무시하거나 가볍게 고개를 저으면서 올라갔는데 만약 그렇다고 하면 무슨 말을 꺼낼지 궁금하였습니다.

 

 위의 사진은 케이블카에 타기 직전에 찍은 사진입니다. 케이블카는 4, 5인이 타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서서 타는 타입이었습니다. 같은 케이블카에 탄 사람 중 절반은 외국이더군요.

 

 케이블카에 내려서 올라오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자물쇠였습니다. 사랑의 자물쇠라고 저걸 걸어놓으면 사랑이 영원하다나 그런 이야기가 있는 것 같던데 수가 저러니 말이 안 나오더군요.

자물쇠에 포위당한 통로에

자물쇠로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되어버린 조형물까지. 어느 정도 관리는 해야 할 것 같은데 하필이면 자물쇠라 틀을 통째로 뜯어버리고 새로 설치하는 거 외에는 답이 없어 보이네요.

 

남산 정상에서 보는 서울 전경은 상당히 멋있었습니다. 다만 사진을 남쪽으로 찍어야 하는데 하필이면 제가 도착한 게 점심시간쯤이라 역광 때문에 사진이 멀쩡하게 나온 게 별로 없습니다. 간신히 이 사진 한 장 정도만 제 마음에 들게 뽑혔네요. 이렇게 보면 한강과 잘 어우러져서 서울도 꽤 아름답네요. 다만 조금만 더 관리해주었으면 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튀어나온 구조물이나 안전을 위한 시설물이 시야를 가려서 풍경을 해친다던가, 유리창이 좀 더 투명했으면 좋겠다던가 말이죠.

 

 위에서 서울 전경을 내려다보면서 유독 흉물스러워 보이는 건물이 하나 있어서 찍어서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아마도 그랜드 하얏트 서울일 거라고 답변이 왔습니다. 건축과 디자인 양쪽에 다 문외한이라 어떤 의도로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너무한 수준으로 풍경을 망가뜨리고 있더군요.

 

 남산타워에 있는 봉화대도 구경했습니다. 이왕이면 연기나 불꽃도 나왔으면 했지만 그건 조선 시대에도 뭔가 변고가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없는 게 자연스럽겠죠. 바로 뒤에 정자도 있어서 날씨가 따뜻한 봄이면 도시락을 와서 가족끼리 소풍 와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복을 부르는 황금돼지라는데 저는 이쪽에는 관심이 없지만, 부모님이 좋아하셔서 한 장 찍어왔습니다. 예전 일본 여행 갔을 때 선물 중에서 마네키네코를 제일 좋아하신 것도 그렇고, 어르신들은 재물복이라는 단어를 많이 좋아하시더라고요.

 광장과 그와 이어지는 산책로를 보니 감탄이 나오더군요. 케이블카를 선택한 것이 후회될 정도였습니다. 날씨와 거리를 고려해보면 무리라는 결론이 나왔지만 그래도 걷고 싶어지는 거리였습니다.

 

 식사를 어떻게 해결할지 사전에 결정하지 않고 여행을 할 때는 그 지역 음식점의 메뉴를 자세히 보는 게 도움이 됩니다. 만약 특정 단어가 유독 많이 언급된다면 그게 그 지역 대표 음식일 가능성이 크고, 보통 그 메뉴는 실패 확률이 낮더군요. 남산타워 주변에서 그렇게 느낀 것이 왕돈까스였기에 점심은 제일 제면에서 왕돈까스를 먹었습니다. 가격은 입장료 11,000+ 왕돈까스 13,000원이니, 패키지로 타워 안에서 24,500원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먹는 것과 차이는 나지 않지만 원래 관광지는 분위기잖아요. 왠지 여기서는 이렇게 먹는 게 더 분위기에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먹었습니다. 맛은 평범하였고 산처럼 쌓여서 나온 양배추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원채 식사량이 적다 보니 돈까스 반 개와 양배추의 절반은 남겼네요.

식당 창문으로 내다보는 경치가 절경이더군요. 유리창 너머라서 사진이 좀 흐리게 나왔는데 실제 보았을 때는 이 사진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남산타워는 입장료 11,000원을 내고 들어가야했는데 솔직히 말해서 다음에는 들어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안에는 위처럼 영상관이 있고, 전망대와 과자 과게 기념품점이 있었습니다.

 

 다만 전망대로서 남산타워는 가치가 떨어진다고 느낀 것이 타워가 있는 곳이 남산 정상이어서 타워에 올라가지 않아도 서울 전경을 보는데 큰 무리가 없습니다. 적어도 저는 굳이 돈을 더 내고 올라갈 이유를 거의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온 기념으로 엽서 한 장을 사서 주머니에 넣었는데 어디서 떨어뜨렸는지 집에 와서 보니까 없네요. 갑자기 기분이 확 상했습니다.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명동 역을 기준으로 남산타워 반대쪽에 있던 명동 성당도 들렀습니다.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여기는 대한민국 민주화의 성지 중의 하나이기에 한 번은 들리고 싶었습니다. 해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어야해서 별로 자신이 없긴 하였는데 확실히 사진이 좀 별로네요.

 

크리스마스가 다가와서 그런지 예수 탄생을 표현한 조형물이 있더군요. 시기가 시기라서 경건한 신앙심을 가지신 분들이 많아보여서 가볍게 한 바퀴 돌고 폐가 되기 전에 나왔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계단 하나만 내려와도 왁자지껄한 번화가라서 정취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원래는 지하철로 몇 정거장 더 가서 테지움도 들릴까 생각도 있었는데 날씨도 춥고 다리도 아파서 명동 성당 바로 맞은편에서 부모님 드릴 고로께를 야채 하나, 감자 하나 담아왔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기왕 명동까지 갔으면 넉넉하게 사와서 두고 두고 먹지 달랑 두 개냐고 쪼잔하다고 하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