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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의 영역/애니메이션-영화

논논비요리(2013) + 리피트(2015) - 판타지

 

치유물로 불리는 장르가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이유는 현실에 지친 이들에게 정신적으로 쉴 수 있는 곳을 제공해주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저러한 장소가 절대로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할 지라도 저러한 곳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포근해지죠.

이것은 이찌보면 도시민들이 시골에 가지고 동경과 비슷합니다.

푸른 녹음, 한적한 생활, 마음 푸근한 이웃,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때때로 귀농을 꿈꾸는 이유입니다.

비슷한 뿌리에서 나온 두 가지 판타지를 근사하게 묶어낸 작품이 이 논논비요리입니다.

 

물론 이 작품을 보고 정말 시골이 저럴 것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시골에서 꽤 오래 살아본 제가 보장합니다.

몇 년을 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냄새, 청바지조차 뚫어버리는 무시무시한 산모기,

여름이면 밤마다 방충망에 잔뜩 들러붙는 온갖 날벌레, (눈으로 보기 전까지 나방이 이렇게 큰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외부인에게 폐쇄적이고 적대적인 사람들이 보통 도시인이 경험하게 될 시골이지요.

솔직히 과장 좀 보태서 말하면 태어나서부터 도시에서 살았던 5학년 여자 아이가 시골 생활에 저렇게 잘 적응한다는 것은

과학자인 할아바지가 사실은 지하실에 거대 로봇을 숨겨두었다는 거나

어느 날 하늘에서 우주인 미소녀가 떨어져서 동거하게 되었다는 거와 비슷한 소리로 들립니다. 

 

하지만 이런 것이 작품을 감상하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차피 치유물은 실제 인간 관계가 저렇지 않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에게 싫은 부분을 전부 잘라내서 보여주는 장르이니

해당 장르의 팬들에게 시골의 부정적인 면을 전부 잘라내서 보여주는 것이 어색한 일이 아니니까요.

오히려 도시인 시점에서 볼 때 신기해보이는 시골의 모습을 소재로 해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갈 수 있어서

이 장르에 익숙한 팬마저도 불편할 정도로 억지스러운 캐릭터나 상황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 더 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듭니다.

특히 장르 특성상 이야기를 진행하고 사고를 일으키기 위해서 트러블메이커의 폭주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한계를 탈피하는데 성공한 것만으로도 같은 장르의 선배들과 구분되는 장점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이 장르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아즈망가 대왕에서 토모가 걸어다니는 자연재해인데 비하면 나츠미는 훨씬 자연스럽죠.

 

PS.

전에 결혼한 친구가 가끔 마눌님과 함께 애니메이션을 본다고 하던데

이 작품을 보면서 '렌쫑 귀여워'를 외치다 등짝 스매시를 당했다는 슬픈 일화를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