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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의 영역/애니메이션-영화

학교괴담(2000) - 90년대를 상징하는 요소

 

시대정신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한 시대를 관통하는 절대적인 정신이라는 의미이지요.

저는 이미 지난 시절이 되어버린 90년 대 작품을 작품을 좋아하고 자주 감상하다보니 그 안에 담긴 무언가가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80년 대와도 다르고, 2000년 대와도 다른 저 시절 사람들이 가장 절실하게 느끼고,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문제. 

이런 것들을 통해서 당시 시대정신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면이 잘 드러나는 작품을 저는 '90년대스럽다.' 고 합니다.

 

애니메이션의 장르 중에서 가장 수명이 짧은 장르를 꼽으라면 저는 개그라고 생각합니다.

개그 코드는 생각보다 빠르게 바뀌고, 웃을 수 없는 개그는 서로 껄끄럽기만 할 뿐입니다. 아재 개그란 말이 왜 나왔겠습니까.

그리고 그 다음으로 꼽는 장르가 공포입니다. 위의 신데렐라 걸즈 극장에서 나온 것처럼 환경이 바뀌면 무서운 것도 바뀝니다.

한밤중에 배가 아파서 건물 밖에 있는 푸세식 화장실에 쭈구려 앉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화장실 귀신의 공포를 이해 못하는 법이지요. 

역으로 그렇기에 공포물은 당시 시대상을 진하게 반영하게 됩니다.

 

이 시절 우리들이 가장 뼈져리게 느낀 변화 중에 하나는 여성들의 사회진출과 그로 인한 '어머니의 부재' 였습니다.

특히 한일 양국 모두 이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경기침체와 그로 인한 고용불안, 소득감소로 집안을 지키던 어머니들이 강제로 직장으로 내몰리는 형태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미 핵가족이 일반적인 환경에서 아이들만이 집안에 남게 되었고, 지금과 달리 이를 위한 사회적 안전망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귀신이 없다고 하여도 툭하면 우는 동생을 데리고 어머니가 없는 집을 지키는 해미의 공포는 당시 우리들의 공포였습니다.

어머니가 없는 집을 지켜야했던 당시 장남, 장녀들은 어쩔 수 없이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어른이 되었어야 했었죠.

어른이 없을 때만 나타나 아이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바바사레가 나오는 6화를 보면 당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어머니가 없는 집안은 왠지 모르게 넓게 보이고 익숙하던 광경도 뭔가 튀어나올 것처럼 무서워보였죠.

 

결국 학교괴담에서의 공포를 시청자들이 공감하는건 

요괴가 튀어나오더라도 집안에 나온 아이들끼리 어머니의 조언(전화?)을 얻어 해결해야하던 당시의 시대상과 맞물리는겁니다.

참고로 이 구도에서 아버지가 일관적으로 배제되는 이유는

먼저 당시 '감히' 아버지에게 집안에서 벌어진 일로 전화해서 도움을 요청할 수 사람은 거의 없었고

다음은 어차피 집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물어보아도 대부분 아버지는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시대에 따른 어머니의 묘사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는데

80년 대까지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어머니는 가정에 존재하는게 당연한 시대였습니다.

하교하면 어머니가 맞아주시고, 친구 집에 놀러가면 친구 어머님께 인사드리는게 자연스러운 시대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90년 대에 들어서면서 '어머니가 부재'가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늘어났습니다.

다만 이 시대의 작품들은 후대 작품들과 달리 오히려 어머니와의 유대를 강조되는 경향이 강합니다.

어머니를 우리 옆에 있지 않기에 더욱 그립고 보고싶은 존재이며 항상 우리를 보고 있는 존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들어서면서 특별한 이유가 없음에도 어머니가 작품에 언급되지 않는 '어머니의 배제'로 바뀌게 됩니다. 

아즈망가 대왕이나 케이온 같은 작품 펼쳐보면 부모가 없을 리가 없는데도 존재감이 없습니다.

 

또 하나는 환경 보호가 대중의 관심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각종 공해 때문에 생기는 병들이 나타나고, 산성비와 스모그 같은 환경오염이 실질적인 위협으로 피부에 와 닿기 시작한 시기이지요.

덕분에 환경보호를 주제로 삼은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하였는데 '출동 지구특공대'나 '외계소년 위제트'가 나온 것이 이 시절이죠. 

이런 분위기 속에서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행위를 악으로 규정하고, 이들이 벌을 받는 권선징악적인 묘사가 늘어나게 됩니다.

이 작품에서도 봉인당한 악령들이 되살아나게 된 계기가 이들을 가두어두고 있던 뒷산이 개발되면서 파헤쳐졌기 때문입니다.

 

작품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면 이 작품의 스타는 누가 뭐래도 다크시니죠.

원래 이름은 아마노자쿠지만 투니버스 시절 인기있던 작품이라 다크시니로 기억할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주인공 일행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같은 집에서 살면서 해미와 누리에게 점점 정을 붙여가고 특히 순수하게 호의를 표해주는 누리에게 끌려 점점 믿음직한 아군이 되어갑니다.

특히 마지막은 이 작품을 본 사람들은 모두가 기억할 명장면이었죠.

 

그리고 다시 보니 구교사의 요괴들이 은근히 불쌍해보이더군요.

화장실의 하나코상, 긴지로 석상, 인면견, 과학실 인체 표본 같은 얘들은 따지고 보면 주인공에게 해코지한 적이 없습니다.

주인공들이 지레 겁 먹고 비명을 지르고 도망갔을 뿐이죠.

오히려 구교사에서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피해를 보고 나중에는 결국 주인공 일행에게 협조까지 하는 선량한 요괴들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