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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의 영역/애니메이션-영화

맨 오브 스틸(2013)

 후배가 이번에 집을 구매하여서 어제 집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양재 쪽에 오피스텔을 하나 샀던데 기대 이상으로 좋더군요. 전망도 좋고 좁지도 넓지도 않은 혼자 살기 알맞은 크기에 조용하면서 교통도 편하고요. 결혼하기 전까지는 이번에 산 제 아파트는 전세나 월세로 두고 이런 방 하나 얻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치가 위치다 보니 그 방 하나 가격이 제가 산 아파트하고 똑같다는 것이 현실적인 문제지만요.

 

 원래는 저의 보드게임 모임도 함께 진행하려고 했는데 보드게임을 가지고 오기로 한 멤버가 들고 오는 것을 깜빡 잊어버려서 점심 식사 후 일정이 붕 떠 버렸습니다. 그래서 결국 TV에 제 넷플릭스 아이디를 연결해서 같이 영화를 보기로 하였습니다. 전부 KAIST 시절 애니메이션 동아리 소속이어서 처음에는 애니메이션을 보려고 하였지만 한 편으로 깔끔히 정리되는 게 낫지 않냐는 말이 나오고, 점심 먹을 때 저스티스 리그의 감독판이 기대된다는 말이 나와서 이번 기회에 맨 오브 스틸을 보기로 하였습니다.

 

 이 영화는 슈퍼맨의 기원을 다룬 영화입니다. 외계 행성 크립톤 출신으로 행성의 멸망 직전 지구로 보내진 칼 엘은, 캔자스의 양부모 아래에서 클라크 켄트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남들보다 좀더 튼튼하고, 좀더 강한 힘 때문에 고생하기는 하지만 양아버지의 도움으로 서서히 자신이 태어난 것과 다른 세상에 적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크립톤의 생존자인 조드 장군이 나타나고 그는 지구를 새로운 크립톤으로 만들어서 인류를 멸망시키는 대신 크립톤을 부활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클라크는 지구인으로서 이를 저지하려고 스스로 슈퍼맨이 되려고 합니다.

 

 영화는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자기 자신만의 색깔을 뚜렷이 가지고 있는 작품이더군요. MCU 영화들이 보통 인간보다 조금 더 강한 존재들의 싸움이라는 느낌이라면 이 작품은 인간에 손이 닿지 않은 다른 차원의, 말 그대로 신들의 싸움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인간은 말 그대로 무력하게 그들의 싸움에 휘둘릴 뿐이었습니다. 분노해서 주변에 피해에 개의치 않는(몇몇 장면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명백히 슈퍼맨의 감정적인 행동에 피해를 보았습니다.) 슈퍼맨이 약간 이질적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영웅 서사의 첫 편에서 아직 미숙한 영웅을 다루는 이야기라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받아드릴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조드 장군은 설득력 있으면서도 과하게 감정 이입하지 않게 만든 상당히 잘 만든 악당이었습니다. 조드 장군이 등장할 때마다 영화가 생기를 가진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기대보다 괜찮은 거지 단점이 심해서 좋은 작품이라고 선뜻 말하기는 힘든 작품입니다. 후속작인 저스티스 리그가 제 기대를 많이 낮춰준 덕을 크게 봤습니다. 위에서 조드 장군이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었다고 적었는데 그가 등장하기 전까지 영화가 굉장히 지루합니다.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농담하고 잡담하는 분위기여서 버틴 거지, 혼자 보았으면 30분도 안 되어서 다른 작품을 찾았을 만한 작품입니다. 장면 간의 연결이 어색해서 몰입감도 떨어지는데 이야기의 설득력도 부족합니다. 첫 장면부터 멸망 직전의 행성에서 조드 장군이 어째서 쿠데타를 일으켰는지 이유가 제시되지 않고, 양아버지의 죽음에서도 이걸 죽게 놔둔다고?’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심지어 앞에서 긴 시간을 들여 설명한 내용이 후반에 큰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양아버지를 죽게 만들면서까지 정체를 숨기려 한 켄트는 지구의 위기 앞에 아무런 갈등 없이 슈퍼맨이 되었죠. 두 강력한 존재가 화려하게 치고받는 것에 만족해서 다른 단점에 별 신경 안 쓸 수 있다면 추천하지만 그래도 영화의 반이 볼 가치가 없는 작품은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액션 클립만 따서 보고 싶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