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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진지한 이야기

멋대로 적어보는 삼국지 이야기(2) - 황건적의 난과 십상시의 난

 환관 세력에 의한 독재 정권은 황건적의 난으로 파국을 맞이하게 됩니다. 자신의 통치 영역 내에서 현 정권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무너뜨리겠다는(창천이사 황천당립!) 군사 조직이 궐기하였는데,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환관 세력은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고, 군을 지휘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사대부 세력에게 먼저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군권을 잡은 사대부 세력은 황건적의 난을 큰 어려움 없이 토벌하면서 자신들의 역량을 입증하였습니다. 황건적의 난이 시작된 것이 184년이고, 장각이 병사한 것이 같은 해 184년이니 황건적 세력은 사대부 세력의 등장 이후 삽시간에 와해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는 황건적의 난을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당시 자료를 보아도 농민 계급에서 국가를 통치할만한 유무형의 자산이 쌓여있다는 지표가 전혀 없고, 하다못해 황건적이 영토의 일부를 점거한 후 관리를 임명하고 세금을 걷는 등 통치 행위를 했다는 증거를 찾기 힘듭니다. 결국 국가에 대한 불만을 바탕으로 대규모 봉기를 하였지만, 학문적, 경제적, 군사적 역량이 전혀 없는 농민 집단에서 애당초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나라의 멸망 원인이라기에는 황건적의 난은 1년도 되지 않아서 진압되었고, 그 뒤에 훨씬 큰 영향을 미친 수많은 사건들이 있어서 저는 개인적으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황건적의 난이 미친 영향이 없지는 않습니다. 이제까지 중앙에서 독점적으로 군사력을 관리하였지만 지방 세력들은 황건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독자적으로 군사력을 보유하게 되었고, 황건적의 난에서 무능한 모습을 보였던 한나라 중앙정부는 이를 사실상 허용하게 됩니다. 또한, 이제까지 제한된 권한 밖에 없던 주(州)자사가 군권을 포함한 주목으로 바뀌는데 이는 후한 말 군벌들이 난립할 수 있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됩니다. 또한, 황건적의 난으로 한 사람을 정계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되는데 그가 하진입니다.

 

 많은 삼국지 서적에서 무시당하지만(아마 도축업자 출신인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진은 황건적의 난 이후 상당한 정치적으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환관 세력은 난이 끝나자 각지에 독우를 보내서(유비에게 보내진 독우가 유명합니다.)  황건적의 난으로 명성을 쌓은 사대부 세력을 쫓아내고 시계를 난 이전으로 돌리려고 하였는데, 하진은 적극적으로 사대부 세력을 감싸주면서 사대부 세력의 보호자를 자처하였고, 그러면서도 수도의 군사력을 틀어쥐고서 원소와 같은 사대부 세력 급진파의 정변을 사전에 막아 환관 세력도 보호해 주었습니다. 즉, 두 세력의 정면충돌을 막으면서 그 사이의 중재자가 되려고 하였는데, 이는 아무리 외척이라고 해도 기반이 될 세력이 없는 하진에게 있어서 최선의 선택이면서 환관-외척-사대부 세력의 세력 균형을 복원하여 한나라의 정권을 안정시키는 방법이기도 하였습니다.

 

 크게 보면 하진은 이러한 난세에 항상 존재하는 복고주의자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과거 전성기의 시스템을 복원하려고 하는 자이죠. 그러나 이미 환관 세력과 사대부 세력 간의 갈등은 하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사대부 세력은 환관 세력을 살려둘 생각이 전혀 없었고, 하진은 이러한 강경파를 통제하는데 점점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환관 세력은 하진의 의사와는 별개로 자신들이 권력을 놓고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이판사판의 도박이라도 걸어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하진을 암살하고 군권을 탈취하려고 시도하나 실패하고 몰살당하게 됩니다. 이것이 십상시의 난입니다. 정국 안정을 꿈꾸는 온건파인 하진마저도 죽으면서 세상은 본격적으로 어지러워지게 되고 뜻밖의 인물이 튀어나오게 됩니다. 동탁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