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교로 채점을 하다보면 때때로 얄미운 답안이 있습니다.
뭔가 부족해보이고 날림으로 적은 것 같은데도 채점기준의 체크포인트를 정확히 짚은 답안 말이죠.
제게 있어서 이 소설은 저런 답안을 떠올리게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요소들을 두루두루 갖추고 있어서 뭔가 인정하기 싫은데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소설입니다.
제 취향에 맞는 소설은
1) 제 예상과 다른 뜻밖의 결말이 나오거나, 뜻밖의 요소로 결말이 지어진다.
2) 놀라서 앞에서부터 읽어보면 갑자기 튀어나온 요소가 아니라 지나치기 쉬운 곳에 암시나 복선이 충분히 깔려있다.
3) 거기에 읽으면서 웃을 수 있는 글이라면 금상첨화
덕분에 서술트릭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인데 이 작품은 상당히 수준높은 서술트릭이 삽입되어있습니다.
특히 2권에서 속된 말로 뻑 갔습니다.
마지막 늘여름 콤비와의 싸움에서 성실하게 공부하여 높은 점수를 준비해간다는 정석적인 해답을 내놓을 줄 몰랐거든요.
앞에 복선을 깔아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저 바보에 사고뭉치인 아키히사가 철야로 공부할 것이라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거든요.
이 부분이 소설의 주제인 '정말로 소중한 것을 위해서라면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할 수 있다.'가 처음 나오는 부분인데
단순한 반전이 아니라 뭔가 가슴이 뜨거워지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이 작가가 대단한 것이 개그가 필요한 부분에서는 끝없이 가벼우면서도 필요할 때는 가슴에 불을 제대로 지필 줄 알더군요.
9권의 하이파이브 장면과 이어지는 '낙숫물이 바위를 깨부순다.'에서는 열혈만화 분위기도 나더군요.
다만 '마리아님이 보고 계셔.'나 '늑대와 향신료'보다는 호불호가 갈리는 소재를 많이 차용했다는 점에서 남에게 추천하기는 좀 힘들더군요.
전에 동아리에서 이걸 읽은 사람들도 있었는데 다들 히데요시 개그만 하고 있어서 뭔가 벽이 느껴지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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