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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의 영역/애니메이션-영화

신세기 GPX 사이버 포뮬러 11(1992)

1.

초등학교 시절 '영광의 레이서'가 끝나고 나서 남자 아이들 사이에서는 누가 최고의 레이서냐는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적어도 저희 반에서는 여기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것이 나이트 슈마하였습니다.

뛰어난 실력과 냉철한 판단으로 부상으로 퇴장하기 전까지 어느 누구도 슈마하를 실력으로 누르지 못했었죠.

그 다음으로 많은 표를 얻은 것이 란돌, 란돌이 홍차만 마시지 않았다면 그랑프리에서 전승도 가능하다는 논리였습니다.

그 논쟁에서 주인공인 하야토는 영 인기가 없었습니다. 좋은 머신에 탔을 뿐이지 실력은 평범한게 아니냐는 말이 많았습니다.

 

이렇기에 저는 TVA 사이버 포뮬러가 절대 평작 이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감독이 이걸 의도했을 리는 없을테니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것이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닿지 않은 것이거든요. 

하지만 TVA가 불완전연소하였기에 OVA 시리즈는 훨씬 수월하게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었습니다.

 

2.

OVA 더블원의 이야기는 하야토가 우승을 한 다음 해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챔피언으로서 새로운 시즌을 시작한 하야토,

그러나 각 팀들이 도입한 새로운 머신들은 아스라다의 성능을 뛰어넘고 있었고 계속되는 패배에 하야토는 정신적으로도 궁지에 몰립니다.

그러나 오오토모의 충고에 마음을 다잡은 하야토는 폭우로 머신들이 제 성능을 내지 못하는 환경에서 우승을 하면서 반격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안심하는 것도 잠시 나이트 슈마하가 AOI ZIP 팀으로 복귀하여 하야토의 앞을 막아서게 됩니다.

승리를 위해서는 거친 방법도 마다하지 않는 슈마하를 꺾기 위해 하야토는 한계에 도전하며 진정한 레이서로서 성장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더 말할 것이 없는 기획의 승리입니다. 시청자들이 무엇을 보고 싶어하는지 맥을 정확히 짚었어요.

아스라다가 더 이상 상대보다 뛰어나지 않을 때 하야토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랑프리 초반에 최강자로 군림하던 슈마하가 다시 서킷에 돌아와 란돌과 같은 새로운 강자들과 대결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TVA 사이버 포뮬라를 좋아한 사람이라면 듣기만 해도 가슴이 뛸만한 소재들을 연이어서 들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작의 성장이 미완성이라고 느꼈던 팬들에게 하야토가 한 사람의 레이서가 되는 모습을 그려주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카가가 다시 조력자로 등장하고, 연인 관계로 발전한 신죠와 미키를 그리는 등 관객들이 좋아할만한 장면이 많아요.

 

3.

캐릭터로는 사이버 포뮬러 OVA를 대표하는 캐릭터인 클레어 포트란이 여기서 처음 등장하였죠.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스고 팀에서 승리를 추구하는 승부사 기질이 있는건 하야토 밖에 없었습니다.

승리에 대한 중압감을 나누어 짊어질 사람이 없으니 정신적으로 기복이 생기는 것이 하야토가 처한 현실이었고요.

미키가 근성은 있지만 그건 장인정신에 가까운 것이고 나머지 멤버들은 드라이빙 동호회라고 불러도 할 말이 없을 수준이지요.

클레어 포트란은 느슨한 스고 피트를 일신하며서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저도 좋아하는 캐릭터입니다. 외유내강 형 캐릭터에 4차원 성향이 있는 금발미인이라니 최고잖아요.

 

그리고 전작에서 승리를 위해 피도 눈물도 없는 캐릭터로 묘사된 아오이 쿄코가 완전히 개그 캐릭터로 바뀌었습니다.

나중에는 무려 히로인까지 되는 분의 변모가 여기서부터 시작이군요.

 

4.

아, 그래도 마지막 주행은 좀 너무했습니다.

이걸 사이버 포뮬러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는 사람이 있지만 저는 그 시절에도 

'하야토가 그 동안의 괴롭힘에 원한을 품고 여기서 슈마하를 묻어버리려는건가?' 라는 생각이 먼저 들더군요.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을 시속 500km로 달리게 하다니 무슨 짓거리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