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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이어지지 않는 이야기/Infinity Saga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

1.

'TV 애니메이션 1쿨과 이어지는 극장판을 연이어 시청한 것 같다.'

제가 극장에서 나와 카카오톡으로 보낸 첫번째 감상평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인피니티 스톤의 소멸과 타노스 참수라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시작합니다.

무엇보다 저에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상처투성이고 무력한 타노스를 토르가 화풀이로 죽였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신답지, 영웅답지, 남자답지 못한 행동이기에 토르가 정신적으로 얼마나 무너져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전반부는 '어벤져스: 타임 트래블'이라는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대형 스크린으로 보는 보람도 별로 없고, 액션이나 연출도 매주 한 편 나오는 드라마 수준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면의 전환이 잦고 이야기를 짧게 짧게 끊어가서, 영화를 보는 기분이 들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영화가 이제까지 MCU를 즐겨왔던 팬들에 보내는 선물과 곧 보내줘야 할 히어로들의 마지막 인사로 가득 차 있다 할지라도

마지막 후반부의 폭발력이 없었더라면 굳이 평일에 시간을 내서 영화관을 찾은 입장에서는 본전 생각이 났을 것 같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후반부는 저에게 있어 '인피니티 워'부터 이어지는 아쉬움을 시원하게 날려주는 멋진 영화였습니다.

 

2.

전에 올린 감상문에서 언급하였다시피 저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 박한 점수를 주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전에 쓴 글에도 나왔다시피 주인공들이 멍청해보인다는 것입니다.

이건 저에게 있어서 일종의 금기입니다. 주인공 집단이 멍청해다고 느끼는 순간 작품이 그저 웃깁니다.

주인공이 멍청해도 괜찮은 장르는 코미디 밖에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좀더 근본적인 이유를 찾았습니다. 불완전 연소입니다.

우주의 미래를 걸었다는 거창한 명분, 지면 모든 것을 잃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비해서 이들의 행동은 너무 안이합니다.

타노스가 혼자 있는 틈을 노려서 건틀렛을 벗긴다는 얕은 꾀, 보병 방진으로 괴물들과 부딪치는 시대착오적 전술.

이게 슈퍼 히어로들이 모여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나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고,

그러기에 영웅들의 처절한 모습에서 작위적이라는 느낌 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이 영향으로 엔드 게임 초반부의 어벤져스의 행보까지 살짝 삐딱하게 보았습니다.

저렇게 손도 발도 못 써보고 일방적으로 졌으면서도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떼쓰기로 보였거든요.

 

그리고 그 아쉬움은 'Avengers! Assemble...' 이후 눈 녹듯 사라집니다.

포탈에서 이제까지 영화에 나왔던 모두가 타노스와 싸우기 위해서 뭉칠 때 제가 들은 소리는 이랬습니다.

'그래, 우리는 졌다. 그래도 이렇게 지면 억울해서 못 견디겠다. 다시 한 번 제대로 한 번 붙어보자!!'

그리고 정말로 모든 것을 쏟아내는 제대로 된 전투가 벌어집니다.

 

저 대사도 가슴에 와 닿았는데 이제까지 어벤져스는 팀 이름이었지 한 번도 복수자였던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 전투에서 어벤져스는 단순한 팀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저 자리에 모인 모두는 자신 혹은 사랑하는 자의 목숨을 빼앗긴 자들이며, 빼앗았던 자들과 맞서기 위해 나온 진정한 복수자들입니다.

진정한 모든 복수자들의 집합이었던 것이지요.

 

3.

타노스의 변화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는데 저는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의 타노스는 자신의 신념에 대한 광신으로 똘똘 뭉친 캐릭터입니다.

자신의 목표가 성취된 후에 군대를 해산하고 은둔하였고, 죽음조차 완성이라고 칭할 정도였죠.

그에게 있어 어벤져스의 행동은 그 신념이 달성불가능하다는 선언이었고, 이성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한 행동이었다고 봅니다.

 

오히려 아쉬운게 있다면 아무리 스톤이 없다고 해도 갑옷에 무기까지 든 '워로드' 타노스가 생각만큼 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작중에서 닥터 스트레인지가 우리가 이길 단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지만

물을 막아내기 위해서 전투에서 빠져있던 닥터 스트레인지가 합류하여 스칼렛 위치와 캡틴 마블과 힘을 합친다면

굳이 토니가 희생하지 않았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더군요.

타노스가 조금 더 강해서 토니의 불가피한 희생이 좀더 부각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4.

'I am Iron man', MCU의 시작이 된 그 대사로 자신의 정체성을 선언하며 토니 스타크는 영웅으로 죽었습니다.

그의 아버지의 말처럼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선택하였고, 자신을 남기고 다른 사람들이 죽는 악몽에서 영원히 탈출하였습니다.

누구보다도 이기적이었던 그가 최후에는 모두를 위해서 희생한 것이죠.

 

스티브 로저스는 마침내 데이트 약속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70년 후의 세계에서 미아일 수 밖에 없던 캡틴 아메리카는 스티브 로저스로 있을 수 있는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시 눈을 뜬 후 다른 사람을 위한 길 밖에 없었던 그는 마지막에 스스로의 행복을 선택한 것이죠.

 

이렇게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는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인피니티 사가를 지탱하던 두 개의 기둥이, 인피니티 사가의 종료와 함께 떠난 것이지요.

그 다음 스토리는 어떻게 될까, 이제 어벤져스는 누가 이끌어나갈 것인가,

MCU를 좋아하는 후배와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지만, 지금까지 나온 멤버로는 힘들고 뉴 페이스가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하였습니다.

다음 영화인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서 다음 시리즈의 청사진을 어떻게 제시해줄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개인적으로 지지하는 시나리오는 지구에서 인피니티 스톤이 반복되어서 사용된 여파로

퀵실버나 스칼렛 위치, 캡틴 마블 같은 존재들이 여기저기 생기게 되고 자연스럽게 X맨들이 세계관에 합류하는 것입니다.

저 셋 모두 스톤의 영향으로 생긴 존재이기에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