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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이어지지 않는 이야기/Infinity Saga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

1.

오늘은 지난 10년에 걸쳣 마블이 쌓아올린 인피니티 사가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날입니다.

그렇기에 어제 퇴근하고서 졸린 눈을 비벼가면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마지막까지 감상하였습니다.

아마 엔드 게임은 내일 삼성 최종 면접을 치르고 귀가하는 도중에 보러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2.

영화의 단점은 도로에 있는 요철이나 장애물과 같습니다.

단점이 많으면 영화가 덜컹거려서 보는 내내 불편하고, 때때로 멀미가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자동차 설계에 큰 문제가 없다면 도로에 자갈이 많다고 차가 전복되지는 않습니다.

 

이제까지 MCU 영화들도 완벽하지 않았고, 단점들이 거슬리는 영화도 물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좀 궤를 달리하는데,

저에게 있어 이 영화는 서킷을 쾌속 질주하던 자동차가 갑자기 나타난 바위에 들이박은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극찬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저에게 이 영화는 MCU 최초의 실패작입니다.

 

3.

이 영화의 문제는 와칸다 전투 그 자체입니다.

전투의 시작부터 전개까지 모든 것이 완전히 엉망징창이었습니다.

 

우선 전투의 목적이 납득 가지 않습니다.

이 전투의 목적은 비전에게서 슈리가 마인드 스톤을 분리하고, 분리한 스톤을 스칼렛 위치가 파괴하는 동안 시간을 버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문제인데 어벤져스의 의도대로 이야기가 진행되어 마인드 스톤을 파괴하였다고 가정해봅시다.

과연 타노스와 그의 군대가 마인드 스톤이 없으니 신사적으로 자기 별로 철수할까요?

제 생각에는 분노한 타노스에 의해서 와칸다와 어벤져스 모두가 짓밟히고, 지구 생명체의 절반도 죽었을 것 같은데요.

어벤져스는 영화 내내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을 거부하기 때문에 이 전투는 처음부터 말이 안됩니다.

비전이 슬퍼하는 친구들 손에 죽는 대신, 분노한 외계 침략자에서 죽는 것으로 바뀔 뿐이에요.

 

어벤져스는 처음부터 이 전투를 이길 생각으로 싸웠어야 했어요.

아군 최고의 전력이자 타노스조차 발을 묶을 수 있는 스칼렛 위치가 후방에서 비전을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능 회복을 위한 임시 조치를 마친 비전과 함께 최전방에 투입되어야 하였고,

버키의 총과 워머신의 폭탄이 먹히는 적들에게는 핵을 포함한 미사일로 샤워를 시켜주었어야 했어요.

이러한 수많은 선택지를 포기하고 보호막을 해제하는 순간 전장에 서있는 모든 영웅들은 순식간에 머저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순간 저는 영화에 몰입하는 것을 포기하였습니다. 이건 아니에요.

 

이 영화의 장점은 정말 많았습니다. 

타노스는 악역이라 생각되지 않은 존재감으로 구도자와 광신도로서의 모습을 전부 보여주었고,

복수를 위해서 시련을 하나하나 넘어가는 토르는 신화적인 존재가 무엇인지를 관객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토니의 나노 슈트는 제 취향과 좀 벗어나있었지만, 타이탄에서 벌어진 스파이더맨과 닥터 스트레인지의 싸움은 압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영화의 메인 디쉬라 할 수 있는 와칸다 전투가 실패한 순간 빛이 바랬습니다.

영화를 관람하면서 어벤져스 사상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하였기에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4.

비전은 아쉬웠던 것을 넘어 안타까웠습니다.

비전은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토니가 배너와 함께 만든 인공 생명체이고,

그렇기에 다른 등장 인물에 비해서 관객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기 쉽지 않습니다.

저는 '시빌 워'에서도 비전이 어째서 협정에 찬성하고, 반대파들의 앞길을 가로막는지 끝까지 납득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영화에서 비전의 죽음이 무게를 가지기 위해서는 비전이란 캐릭터를 심도있게 조명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작진은 이 영화에서도 비전이라는 캐릭터를 살려내는데 실패하였습니다.

마지막 비전이 죽었을 때 슬픈 것은 옆에서 오열하는 스칼렛 위치와 좌절하는 어벤져스 때문이지 비전 때문이 아닙니다.

 

결국 비전은 기존 어벤져스로서는 상대할 수 없는 울트론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태어났고,

시빌 워에서 수적으로 모자라는 아이언맨 팀의 머릿수를 맞추기 위해서 협정에 찬성하였으며,

인피니티 워 내내 갑자기 어벤져스 최약체가 되어서 아군에게 보호를 받다가,

타노스가 목적을 달성해야 하기에 너무나도 간단히 머리에 스톤이 뽑혀서 사망하였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하나의 캐릭터로서 다루어지기보다는

작품을 진행하기 위한 소도구로서 다루어졌다고 느껴져서 동정이 갈 정도였습니다.

 

5.

결국 타노스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였고, 어벤져스는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지키려고 하였던 모든 가치는 먼지처럼 스러졌고,

닥터 스트레인지, 스칼렛 위치 등 많은 멤버들을 잃은 어벤져스가 재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벤져스가 어떻게 다시 일어서고 이름 그대로 복수에 성공할지, 내일이면 답을 알게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