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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이어지지 않는 이야기/Infinity Saga

어벤져스(2012)

1.

제가 어벤져스를 관람한지 수 년이 지났고,

지금 볼 작품도 밀린 상황이라서 이 작품을 이제와서 다시 한 번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요즘 MCU 작품들 리뷰들을 차례차례 올리고 중이니 기억에 의존해서 가볍게 적어보려 합니다.

 

2.

'여러 명의 슈퍼 히어로들이 힘을 합쳐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적을 상대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굉장히 단순한 아이디어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리기 쉽지 않은 소재죠.

 

아무리 강대한 적, 불가능해 보이는 과업도 척척 해내는게 그들이 슈퍼 히어로라고 불리는 이유인데

혼자서 해결하지 못해서 다른 동료들과 힘을 합치려 한다는 것 자체가 그들로서는 체면을 구기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자존심을 접고, 고개를 숙일만한 '명분'이 작품 내에서 주어져야 합니다.

영화에서 콜슨 요원의 죽음은 영웅들이 어벤저스로 뭉치는 계기를 만들어 줌과 동시에 

관객들에게는 이들이 힘을 합치는 이유에 묵직한 설득력을 더해주는 중요한 의식이 되었죠.

 

거기에 슈퍼 히어로 이상으로 악역에도 공을 들여야 합니다.

그 적이 충분히 강하게 묘사되지 않는다면 혼자서 이들을 감당 못하는 영웅들의 주가도 덩달아 폭락합니다.

'저스티스 리그'의 최종 보스인 스테판울프가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데 실패하자

슈퍼맨을 제외한 리그 멤버들이 모두 무능하고 약하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죠.

 

게다가 여러 영웅들이 나란히 서게 되면, 불가피하게 그들을 비교하게 되는데

상대적으로 약체로 묘사되는 슈퍼 히어로는 그 존재 가치조차 부정당하게 됩니다.

조금만 잘못 다루어도 캐릭터를 어마어마하게 훼손하는 말 그대로 '독이 든 성배' 지요.

 

3.

그래서 이 영화는 이런 점들에 각별히 신경을 씁니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화려하게 리펄서 건을 쏴대는 아이언맨,

천둥 번개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인간과는 다른 강함을 보여주는 토르,

통제불능 상태가 되는 위험성이 있지만 한계를 보이지 않는 힘을 가진 헐크,

이런 멤버들은 특별히 관리해주지 않아도 존재감을 드러내며 전면전 상황에서 자신의 힘을 뽑냅니다.

 

블랙 위도우 같은 멤버는 스파이로 이들이 활약할 수 없는 국면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합니다.

가벼운 성격의 아이언맨, 고귀한 엘리트인 토르, 분노를 참지 못하는 헐크가 첩보전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이들에게 잡아먹히기 쉬운 캡틴 아메리카는 작품 내내 '특별 관리'를 받습니다.

대중에게 가지는 위상이 강조되며, 가벼운 토니에 비해 신중하고 사려깊은 지휘관으로서의 모습이 강조됩니다.

분명히 다른 전선 멤버에 비해 떨어지는 전투력에도 불구하고 약점보다는 현장 지휘관의 모습이 두드러집니다.

 

호크아이에 이르면 이 영화에 갈채를 보내고 싶습니다.

각 캐릭터에 분량을 할애해야 해서 그렇지 않아도 빡빡한 영화에

새로운 중간 보스를 끼워넣지 않고 호크아이가 그 역할을 맡도록 하면서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았죠.

작품 초중반 호크아이가 아군을 얼마나 괴롭혔는지 생각하면 '호크아이 강하네'라는 인상이 안 들 수가 없습니다.

 

4.

이 작품의 또 하나의 큰 장점은 친절하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보았던 MCU 작품은 '퍼스트 어벤져' 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데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 전혀 없었습니다.

 

아이언맨? 돈 많은 천재가 자기가 개발한 슈트로 영웅 활동하는 친구.

헐크? 분노가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녹색 괴물이 되어서 괴력으로 날뛰는 친구.

영화를 보는데 필요한 정보들은 영화 속에 충분히 제시되어 있어서 관심이 있으면 그냥 보면 되는 영화입니다.

'이것은 팀업 무비이니 개별적인 영웅의 정보는 미리 숙지하고 오세요.' 같은 멋없는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화 내에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다면

캐릭터 상품과 같은 느낌으로 솔로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드는 그런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