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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의 영역/애니메이션-영화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1994)

과학고등학교 시절 애니메이션 동아리의 상영회에는 참 기억에 남는 작품이 많았습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 을 본 것도 거기서였고, 지브리 작품도 과학고등학교 시절에 많이 봤지요. '모노노케 히메', '마녀배달부 키키' 그리고 이 작품이 그 때 본 작품입니다. '이웃집 토토로'도 했던거 같은데 저는 안 갔습니다. '카드캡터 사쿠라'나 '원피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등의 만화책을 접한 것도 그 시절이니 덕질 생활에 큰 보탬을 받은 시기였습니다.

 

 원제가 '헤이세이 너구리 대작전 폼포코' 인 이 작품은 신도시 개발로 인해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너구리들의 생존을 위한 투쟁을 그리고 있습니다. 일본의 전공투를 빗댄 작품이라는 설명이 붙어있지만 그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는 점이 대단하지요. 이것도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확인하니 타카하타 이사오의 작품으로 미야자키 감독은 기획만 참여하였더군요. 그 분 작품 중에서 제가 시청한게 있나 봤더니 '알프스 소녀 하이디'라든가, '빨강머리 앤'이 있더군요. 포스터와 작품 소개를 읽고 자연을 파괴하는 나쁜 인간들을 동물들이 골려주는 유쾌한 작품일 것으로 기대하고 봤었는데 작품은 결국 너구리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잃고 변신술을 익힌 일부만 인간으로 변신하여 인간사회에 숨어사는 새드엔딩으로 끝났습니다. 마지막에 너구리가 보여주던 옛날 풍경에 사람들이 마음을 고쳐먹고 공존하는 결말을 기대하기도 하였지만 별로 바뀐 것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입으로는 너구리와 공존하는 삶을 주장하지만 그들의 양보는 너구리에게 너무나도 작을 따름이었죠. 인간들이 자연을 보호한다고 하는 행동이 얼마나 얄팍하고 자기만족에 가까운지 아는 지금으로서는 이 엔딩이 마음에 듭니다. 오히려 처음 예상대로 끝났다면 지금에 와서는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기만적인 엔딩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을 보다보면 참 인간이란 무서운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환경을 파괴하고 그곳에 살던 동물들을 몰아낼 수 있고, 너구리들의 요술이 통하지 않아서 뿐만이 아닙니다. 중간에 인부가 사망했다는 기사도 뜨고, 너구리들의 작전 중에서 명백히 인명 피해를 유발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도 더 많은 사람의 행복이라는 숫자 앞에서 무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하나의 개인은 얼마든지 대체가능하고요. 너구리들의 작전이 성공해서 기분이 좋아졌다가도 인부가 사망했다는 기사에 숨이 턱 막힐 수 밖에 없던 저로서는 오히려 환경을 파괴하는 것보다 필요하다면 같은 인간을 희생시키는 것이 가능한 점이 더 무섭더군요.

 

마지막으로 감상을 하나만 더 추가한다면 좀 먹먹한 느낌이 들더군요. 저는 환경주의자는 아니고 인간이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환경 파괴는 감수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여우들의, 너구리들의, 토끼들의, 족제비들의 터전을 파괴하고 만든 결과물이 이거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작중에서도 쇼키치가 인간 사회에서 변신해서 살면서 이런 생활을 견뎌내는 인간들이 참 대단하다고 언급을 하고 있지요. 까놓고 말해서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하다못해 PC조차 없던 어린 시절에도 놀거리가 없어서 심심했던 기억은 없었습니다. 다른 무언가를 불행하게 만들면서 이룬 진보가 지금이라면 현재 우리가 그 시절보다 훨씬 행복해야하는거 아닌가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이 작품의 배경인 타마 뉴타운이 결국 어떻게 되었나를 조사해보니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넷플릭스로 이 작품을 보면서 자막이 좀 신경쓰이긴 하더군요. '궐기' 라든가 요즘 잘 쓰이지 않는 단어들은 어떻게든 다른 단어로 대체하려는 경향이 있던데 이게 일본식 조어도 아니고 제가 어릴 때만 하더라더 신문 등에게 흔하게 보던 단어인데 원문 그대로 적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지브리 작품하면 보통 음악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이 작품은 뭔가 노래가 많이 삽입된 것 같은데 작품 끝나고 기억에 남는게 없어서 오히려 신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