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람 사는 이야기

점점 스며드는 우울함

지난 주말에 지인에게 빌린 돈을 전부 상환하였습니다. 이제 갚아야할 돈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모님: 150만 원

지인: 1000만 원 + 이자 25만 원

전세대출 잔여: 2,240만 원

신용대출 잔여: 5,000만 원

전세금: 34,000만 원

 

: 41,240만 원

 

 빌린 돈을 갚고, 카드 대금이 빠져나가고 관리비까지 지불하고 나니 통장에 50만 원도 채 남지 않더군요. 월급날까지 보험료와 기부금 등 빠져나갈 돈이 남아있어서 다음 월급날까지 이제 아무것도 못할 상황입니다. 그 순간 말로 형용하기 힘든 기분이 되었습니다. 요즘 솔직히 좀 울적합니다. 3,500만 원이었던 전세 대출금은 2,240만 원으로 줄였고, 아파트 구매 과정에서 모아놓은 돈을 다 쓰고도 추가로 진 빚 1,175만 원도 다 갚았습니다. 솔직히 할 수 있을 만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재난지원금도 안 준다는 거 보면 소득도 상위 20% 안에 들어요. 1주일에 50시간 가까이 근무하면서 야근 수당도 한계에 가깝게 받고 있고, 시간을 내서 공부를 해서 자격증 수당이나 이런 것도 최대한 받아내고 있습니다.

 

 근데 돈이 없어요. 분명히 숫자는 찍히는 데 그것들이 마치 고운 모래처럼 손에 잡히지 않고 흘러나가는 기분입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올해 계획된 베트남 출장이 취소되면서 출장비만큼 들어오는 돈에 구멍이 생겼거든요. 물론 지금 베트남 사정을 생각하면 못 가게 된 것이 다행이지만 그래도 제 생활의 여유가 완전히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당초 계획대로 내년 1월 1일에 전세 대출을 전부 상환하기 위해서는 이제 남은 여섯 달 동안 매달 380만 원씩 월급에서 제해야 합니다. 거기에 9월에 결혼 정보 회사에 가입하고 혼활을 시작할 예정이라서 추가적인 지출이 예정되어 있어서 계산기를 두드리며 수입과 지출을 맞출 때마다 두통이 올 지경입니다.

 

 이런 생활을 더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돈을 벌고 있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제 인생이 숫자 장난 같아요. 올라가는 집값, 오르락 내리락하는 주식을 쳐다보다가 월급날에는 통장 숫자가 올라가고 조금 지나면 은행에 찍혀있는 대출금 숫자가 내려가면서 통장에 있는 숫자는 사라집니다. 뭔가 광대 놀음 같아요. 이런 숫자 놀음 사이에 주말이 되면 5,000원 짜리 햄버거 세트 하나 사 먹고, 마트에서 세일하는 라면 묶음 집어오고, 편의점에서 4캔에 만 원하는 맥주를 마시는 제 생활은 대학원 다니던 시절과 하나도 변화가 없어요. 빨래 건조기가 가지고 싶은데 어차피 이사 예정이라서 짐을 늘리기도 싫고, 침실에 그림이라도 걸고 싶은데 내 집도 아닌데 못을 박을 수도 없고, 부족한 돈을 쥐어짜서 뭔가 명품이라도 하나 사볼까 생각까지 들고 있습니다.

 

 이 망할 코로나는 끝날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방역 강화라고 위험 시설에 다녀오면 아예 출근을 못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코로나 시작 이후 한 번도 가지 않긴 했지만 코인 노래방이라도 가서 소리 지르고 오는 건 꿈도 못 꿀 일이 되었죠. 언제 올지 기약없는 해외 여행 계획 세우는 게 낙이 될 정도입니다. 이제 또 다시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데 마음을 다 잡아야지 진짜 우울증이 왜 오는지 알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