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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의 영역/애니메이션-영화

중간관리록 토네가와(2018) - 악의 평범성

 한나 아렌트의 저서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는 악의 평범성을 주장합니다. 악을 저지르는 사람은 주변 사람과 구분되는 특이한 존재가 아니라 평범한 인간일 뿐이며, 개인적으로 접할 때는 오히려 친절하고 좋은사람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작품은 해당 주제를 상당히 잘 녹여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두 작품은 도박묵시록 카이지에서 카이지를 막아서는 적으로 나왔던 두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스핀오프 만화입니다. ‘중간관리록 토네가와에서는 거대 재벌 제애(帝愛)에서 효도 회장을 보필하며 그의 지시를 수행하는 토네가와 유키오가, ‘일일외출록 반장에서는 제애에게 갚을 수 없는 수준의 막대한 채무를 진 자들이 끌려가는 지하노역장에서 인부들을 관리하는 오오츠키가 주인공입니다. 그렇기에 도박묵시록을 먼저 읽으면 소소하게 웃을 수 있는 부분이 많지만 읽지 않았다고 해도 이야기의 흐름을 쫓아가는 데 부담이 없는 모범적인 스핀오프입니다.

 

 작중에서 두 사람이 보여주는 모습은 원작과 딴판입니다. 토네가와는 괴팍한 회장의 성미를 견뎌내면서 부하인 검은 양복들을 나름대로 챙겨주고 오히려 그들의 뒤치다꺼리에 골머리를 앓는 좋은 상사로 그려지고, 오오츠키는 특례로 구매한 일일외출권을 사용하여 24시간이란 제한된 시간 동안 친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도락을 즐기는 사회성 좋은 캐릭터로 그려집니다. 이들이 보여주는 너무나도 평범한 모습에서 이들이 사실은 좋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 때문에 혹자는 이들이 원작과 같은 캐릭터라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고 평행세계로 생각하려고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잊으면 안 되는 것이 토네가와가 부하들과 성실하게 노력하고 일치단결하여 성사시키는 일이 다중채무자를 지옥에 빠뜨리는 짓이며, 웃음과 풍류를 느끼게 만드는 오오츠키의 외출이 사실은 사기도박으로 노동자의 돈을 착취해서 얻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 안의 편견과 마주하게 되는데 그것은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부터 열까지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래 인간이라는 건 그런 겁니다. 오히려 작중에 나오는 효도 회장 같은 뼛속까지 악인이야말로 현실에는 매우 드문 경우입니다.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 같이 지내는 동료에게는 자상한 사람도 별 관련 없는 사람에게는 매몰차거나 무관심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부하에게 자상하면서도 회장의 비위를 맞추어서 출세하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사람이 존재할 수도 있는 겁니다. 특히 이들이 완전히 무고한 게 아니라 다중채무자라는 흠이 있다면 '저런 쓰레기들은 저런 꼴을 당해도 싸지.'라고 스스로 변명이 가능합니다. 당연히 그들이 잘못하였어도 법과 제도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지 회장의 장난감으로 쓰여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이런 편견이 위험한 게 역으로 선행 하나만으로도 이 사람이 악인임을 부정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유신정권의 핵심인 차지철은 효자로 유명했고 그 히틀러마저도 동물 애호가로 동물들의 권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결국 사람은 여러 면을 보고서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고 어떤 점이 주고 어떤 점이 부인가는 스스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아마 스핀오프인 이 작품이 2017이 만화가 대단하다.’ 남성부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 이러한 이유에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이 작품이 처음 나올 때는 정발이 나올거라고 믿고 나오면 구매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발 소식은 아직도 들려오지 않고 있고 만화 자체도 점점 지루하고 뻔해지고 있어서 놓아주는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잘 마무리하였으면 굉장히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는 소재였는데 뭔가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