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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의 영역/애니메이션-영화

천사소녀 네티(1995) - 복잡한 감정선을 따라가며

1.

제가 초등학교 시절에 여자아이들 사이에 유행한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천사소녀 네티', '웨딩 피치', '달의 요정 세일러문' 중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애니메이션이 바로 이 작품이었습니다.

노출도가 적으면서도 긴 다리와 동그스름한 어깨가 강조되는 패션 덕에 셋 중에서 여주공이 가장 마음에 들었거든요.

검은 옷의 주인공과 흰 옷의 수녀가 머리를 맞대고 기도하는 그림도 분위기가 꽤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슬프게도 이 작품 역시 당시에는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남자아이들은 다들 여자아이들이 보는 저런 작품을 어떻게 보냐고 허세를 부리고 다녔거든요.

그런데 알고보니 다들 집에서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깨닫고 어마어마한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2.

이 작품은 여주인공인 메이미와 남주인공인 아스카 Jr. 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메이미는 자신을 잡으려 하면서도 자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주는 아스카 Jr.가 마음에 들어서 범행 전에 예고장을 보내겠다고 약속합니다.

하지만 이 감정이 사랑으로 바뀌면서 점점 메이미의 고뇌가 시작됩니다.

아무리 좋아하여도 자신의 정체를 밝힐 수 없고, 정체가 밝혀지면 올곧은 아스카 Jr.가 자신을 미워하지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때로는 옆에 있는 자신이 아닌 세인트 테일만을 바라보는 아스카 Jr.를 원망하며 자기 자신의 다른면인 세인트 테일을 질투하기도 합니다.

이 감정이 잘 드러나는 것이 1기 엔딩곡인 '純心' 입니다.

 

아스카 Jr.의 감정선도 재미있습니다.

아직 어려서인지 자신이 세인트 테일에게 홀딱 반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옆에 두고 싶은 마음과 괴도를 잡겠다는 마음이 엉망징창으로 뒤섞여서 중요한 순간마다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지요.

사실 괴도 세인트 테일 체포 작전에서 아스카 Jr.는 거의 내부의 적 수준이죠. 구해준게 몇 번인가 한 번 세어봐야겠습니다.

본인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지 메이미와 사귀기 시작하니 도시락 예고장을 감추는 등 뭔가 켕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에 마쥬로부터 예고장이 아니라 러브레터 아니냐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받는 모습은 기억에 남네요.

 

3.

달달하고 풋풋한 사랑 이야기를 실컷 즐겨서 이 작품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도 없지 않은데 일단 중반 이후에 큰 의미없이 단순히 양을 늘릴 뿐인 에피소드가 꽤 된다는 것입니다.

막판에 리나가 저 둘은 한참 전부터 붙어다녀야 했다고 말하는게 제작진도 그 사실을 시인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타카미야 리나, 솔직히 여러 가지 의미로 세인트 테일의 라이벌로 어울리는 캐릭터라고 생각합니다.

괴도이기에 아스카 Jr.가 쫓아다녀도 옆에 있을 수 없는 세인트 테일과 반대로 세인트 테일을 잡기 위해서 항상 옆에 있을 수 있죠.

솔직하지 못하고 티격태격대는 메이미와 반대로 자신의 애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캐릭터이기도 하고요.

막판까지 그럴 듯한 삼각관계를 만들 수 있는 캐릭터인데 초반 이후 비중이 많이 줄어들어서 아쉽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미 내적 갈등으로 고민하는 메이미에게 리나와 마지막까지 경쟁하는건 너무 잔혹한가요.

 

4.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또 하나의 장점을 들자면 음악입니다.

특히 삽입곡도 상당히 훌륭합니다. 오프닝, 엔딩 곡보다도 기억에 남을 정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