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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의 영역/독서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 3권 / 오카자키 다쿠마 저 / 소미미디어

3권을 4분의 1 정도 읽었을 때 꽤나 당혹스러웠습니다.

저에게 이 소설의 특징을 설명하라고 하면 첫째로 서술트릭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 전개 방식,

둘째로 사건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일상 속 자그만한 수수께끼와 엇갈림을 푸는 각각의 에피소드와

이러한 에피소드들이 모여서 제법 커다란 하나의 사건을 이루는 방식으로 '한 권'을 구성하는 특유의 구조,

셋째로 직접 발로 뛰지 않고 관계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안락의자 탐정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는 미호시 바리스타입니다.

커피를 소재로 하는 추리소설이라는 것보다 이것들을 소설의 정체성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권에서는 제가 생각하는 이 정체성을 깔끔하게 버렸습니다.

이번에는 커피 컨테스트를 배경으로 하나의 큰 사건을 다루는 방식으로 오히려 정통 추리소설에 가까운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미호시 바리스타도 아오야마와 직접 발로 뛰면서 전통적인 탐정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이 변화가 그다지 달갑지는 않네요.

스포츠로 치면 육각형은 작아도 확실한 툴이 있어 보는 재미가 있는 신인이 다음해 너무나도 평범한 모습으로 변한 느낌입니다.

소설의 완성도는 대충 B+ 정도는 되는 것 같지만 수많은 소설 중에서 굳이 이걸 읽어야하는 동기가 많이 약해졌어요.

 

작가는 아무래도 재미있는 글을 쓰는 사람보다는 좋은 추리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독자로서도 글을 재미있게 썼는지보다 추리소설로서의 완성도를 평가할 수 밖에 없네요.

이번 권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미호시가 탐정 역을 맡는 것이 부자연스럽다는 것입니다.

기존에는 미호시 주변 사람이 미호시의 지혜를 빌리고자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가는 형식이라면

여기서는 거의 안면도 없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인데 이해 관계 당사자 중 하나인 미호시에게 조사를 부탁하는게 어색합니다.

두번째는 사건 동기, 저는 작가가 0의 갯수를 착각했다고 믿고 싶습니다.

사건의 규모와 사건에 말려든 사람의 지위, 그리고 거기에 얽힌 돈이 전혀 맞아떨어지지 않습니다.

장년의 성인 남성에게 인생을 걸어야할 정도의 일이 벌어진다면 10만 달러, 즉, 1억원 정도의 돈은 어찌어찌 마련이 됩니다. 

그러한 돈이 없어서 저 정도의 지위에 오른 사람이 이런 치졸한 일을 벌인다는 것은 설득력이 많이 부족합니다.

세번째로 사건 해결의 과정에서 범인이 소금과 설탕을 구분하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는데

미각을 잃고 나서도 컨테스트에서 우승 다툼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베타랑 바리스타가 그 둘을 구분하지 못하는걸 납득하기 힘들네요.

 

위에서 B+를 준 것처럼 책 자체는 재미있었습니다.

다만 추리라는 소재를 적절히 사용하면서 재미있는 글을 써주던 작가가 제가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서 약간 입맛이 쓰네요.

이 시리즈가 국내에서는 4권, 일본에서는 5권까지 출판되었는데 3권이 일탈인지 작품의 전환인지 확인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