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제는 이어지지 않는 이야기/훈련소에서의 4주

훈련소에서의 4주(2) - 우리는 전문연 중대

저희 중대는 전문연구요원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중대였습니다.

저는 비교할 대상이 없어서 원래 그런가 보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저보다 2주일 먼저 들어간 친구와 6개월 늦게 들어간 친구 이야기에 따르면

오히려 이러한 케이스가 드문 편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다 보니 당시 26세였던 제가 저희 소대 내에서 가장 어렸고

중대 내에서도 저보다 어린 사람이 한 명 밖에 없었습니다.

저희 분대 내 나이 분포를 보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게 28세였고 30세까지 있었습니다.

중대까지 가면 32세까지 있는 훈련소 기준으로 초고령 부대가 되어버렸습니다.

 

반대로 우리를 담당하는 분대장들은

나이가 아무리 많아봤자 24세에 아래로 가면 19세까지 있고

중대장이 30세다 보니 뭔가 기묘한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다만 다들 사회 물도 어느 정도 먹은 사람들이고

중대원끼리도 당연히 상호존대를 쓰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소대장의 우려와는 달리 분대장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반대로 분대장들도 어느 정도 나이가 많은 훈련생들을 존중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물론 몇몇 예외도 있었고, 그 사람들은 나중에 호되게 당하게 되죠.

왜냐면 앞으로 군 생활이 창창한 일반 훈련생들과 달리

저희는 소원수리에 무엇이든 거침없이 적을 수 있었으니까요.

(실제로 괜히 나눠적어도 소용없다고 2주 차부터 중대 내에서 살생부 만들었습니다.)

 

전반적으로 분위기는 평온했습니다.

아예 몇몇 소대장은 대놓고 전문연 중대는 사고치는 사람이 없어 편하다고 했을 정도니까요.

다만 나이도 많고 체력 단련과는 담 쌓은 사람들이라서

1주일 정도 지나니 중대원 전원이 골골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기가 막힌 참사는 알통 구보였는데

연대장님의 지시로 실행된 알통 구보의 결과

분대원 15명중 12명이 의무실로 가고 소대에서 2명의 폐렴 환자가 발생한 참사를 낳았습니다.

분대원들의 건강 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3주차부터 레모나 구입이 허용되었고

퇴소를 며칠 앞두고 전원 오침 시간이 주어지기도 하였습니다.

 

소대원들과는 퇴소하면 앞으로도 계속 연락하자는 말과 헤어졌지만

딱 한 번 모여서 만난 이후에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카테고리 제목대로 저에게 있어서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 이야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