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제는 이어지지 않는 이야기/훈련소에서의 4주

훈련소에서의 4주(3) - 작업과 자유시간

훈련소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것은 시간을 참 의미없게 보낼 수 있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여기 모인 사람들은 전부 병역 특례 요원이고

입소 바로 전날까지 직장에서 일하거나 아니면 랩에서 일하다가 온 상황입니다.

저만 해도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눈코 뜰새 없이 버그잡다가 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할 일이 전부 사라지니 그렇게 시간이 안 갈 수가 없더군요.

 

그렇기에 차라리 작업을 시키는 것이 반가울 지경이었습니다.

멍하니 앉아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무엇인가를 하면 시간이라도 빨리 가더군요.

완력이야 당연히 젊고(?) 팔팔한(?) 군인들에게 댈 것도 아니었지만

이쪽은 랩과 회사에서 다년간 업무에 종사하였고

단체 협동 작업의 경우는 오히려 분대장들 이상의 효율을 보여주었습니다.

 

가장 인상깊은 일화를 하나 들면 

침낭과 이불을 일광소독 하기 위해서 전부 꺼내서 연병장에 널라는 지시가 왔는데

분대장의 지시가 너무 지리멸렬해서 단체로 반발하는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그때 분대장이 얼굴을 떨 정도로 격노해서

너희들끼리 알아서 하고 대신 시간 안에 다 못하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벼르고 갔는데

그 시간 안에 전부 작업을 끝내서 오히려 당황시킨 적이 한 번 있었죠.

트집 잡으려고 여기저기 돌다가 못하니 화를 삭히는 것을 보고 뒤에서 축배를 들었죠.

그때 저희들이 작업하며 외친 구호가 '공대 대학원생에게 불가능은 없다.' 였습니다.

(참고로 그 분대장은 나중에 압도적인 득표수로 최하 평가를 받았고 휴가 짤렸습니다.)

 

훈련소에서 가장 많이 한 작업은 바느질이었습니다.

무슨 작정이나 한 듯이 우리가 쓰는 물건 뿐만 아니라 창고에서까지 물건을 가져와서 할당량을 주었고

할당량이 끝나면 자유시간을 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자기량의 바느질이 끝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직 끝나지 않은 사람 바느질을 도와주었고

분대가 전부 끝나면 다들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여자 친구나 부인이 있는 사람들은 편지를 썼고

저 같은 사람들은 훈련소에서 생활과 기분을 일지로 썼죠.

지금 쓰고 있는 내용도 그때 적은 것을 기반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누군가가 편지로 '마음의 소리'를 인쇄해서 보내준 것을 분대 전체가 돌려읽기도 하였고

종교 행사 때 신부님이 알려준 프로야구 소식에 다들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이 아니라 그때 저희끼리도 참 궁하게 논다고 낄낄대기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