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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이야기/1주일에 한 번 쓰는 단문

1주일에 한 번 쓰는 단문 5회차 - 싸움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듣던 소리 중 하나가 ○○이 성격 참 대단하다.”였습니다. 부정할 수 없는 게 기본적으로 성격 자체가 투쟁적입니다. 지금은 성격 자체도 많이 둥글둥글해지고 적당히 감추는 법도 익혀서 티가 잘 안 나는 편이지만 그렇지 않던 소싯적에는 진짜 어지간했죠. 유치원 들어가기 전 동네 놀이터에서 싸움만 벌어지면 얼굴에 모래를 뿌린다고 동네 어머니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습니다.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갑자기 얌전해진 것은 단지 주먹을 쓰지 않아도 시험 점수로 때려눕힐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지요. 이런 성격이 항상 독이 된 건 아닌 게 급우가 모르는 영어 문제를 물어보고 제가 바로 답을 못하자 , 맞다. 너가 잘하는 건 수학이었지?”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친구도 악의를 가지고 한 말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제대로 욱했고 바로 책을 사서 반년 만에 성문 기본 영어를 독학으로 독파해버렸죠.

 

 문제는 제가 가만히 있더라도 전교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면 선생님들의 관심을 받는 우등생을 고까워하면서 시비를 거는 치들은 어딜 가나 있다는 것입니다. 초등학교는 전교생이 보는 일제고사가 없고 다들 성적에 별로 관심없는 시기였고, 고등학교는 그래도 과학고라서 주먹질하는 학생은 없었는데(물론 훨씬 음습하게 괴롭힙니다.) 중학교 때는 이게 문제가 좀 있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저대로 그쪽과 원만하게 풀 생각이 손톱만치도 없었죠. 오히려 수업 방해하거나 제 친구들에게 손을 댈 때마다 칠 테면 쳐보라는 마음가짐으로 계속 딴지를 걸었죠. 이게 제대로 터진 게 중학교 동창이면 모두가 아는 방과 후 맞짱이었습니다.

 

 3학년 때 반의 소위 일진 중에서 유독 나대는 녀석이 하나 있었고, 저도 그 녀석이 소란을 일으킬 때마다 도끼눈을 뜨곤 하였으니 당연히 사이가 좋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아슬아슬한 관계의 도화선에 불씨를 당긴 것이 기술 산업 수행 평가 시간이었습니다. 제도 시험이었는데 컨닝이 있을 수 없는 시험이라고 선생님께서 다른 업무를 처리하러 나가시자, 그 녀석이 큰 소리로 떠들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학급 반장으로서는... 당연히 명분이고 미운 놈이 못된 짓 하니 당연히 주의를 주었죠. 그러자 그 녀석이 지우개를 던지면서 소위 맞짱을 신청하였고, 저는 지우개를 받아 던지면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토요일 방과 후 운동장 구석에서 일진과 전교 1등이 주먹질하는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싸움은 처음에는 제가 달려드는 상대방의 아랫배를 계속 걷어차며 거리를 벌렸지만 결국 마지막에 접근을 허용해서 안면에 주먹을 맞고 입술이 터졌습니다. 물론 아직은 양쪽 다 싸울 의지가 충만한 상태였지만 거리를 벌리고 주위를 확인한 순간 큰 실수를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운동장 구석이라고 해도 토요일 오후 전교생의 하교 시간에 싸움을 벌인 결과 이미 주위는 구경하는 학생들로 발을 디딜 틈이 없더라고요. 결국 교무실로 끌려가서 한바탕 설교를 듣고 귀가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소문이 좀 나서 중학교 때 저에게 찝적되는 사람도 줄었고, 어른이 되서는 어이쿠 주먹보다 훨씬 무서운 게 법과 돈입니다. 덕분에 그 이후로는 다행히 사람을 쳐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가끔은 스포츠를 보면서 권투나 유도 같은 투기 종목을 하나 정도 배우는 게 남자의 멋을 늘리는 게 아닐까 고민하는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