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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의 영역/혼자하는 게임

90년 대 게임과 버그

요즘 버그로 유명한 창세기전 외전: 템페스트를 하고 있습니다.

유명 블로거가 가상 환경에서 돌릴 수 있게 수정한 버전으로 하고 있는데 절반이 넘었음에도 한 번도 튕기지 않아서 놀라고 있습니다.

창세기전 시리즈가 전통적으로 버그로 말이 많은 작품이긴 하지만 템페스트는 그 중에서도 격을 달리하는 게임이었거든요.

챕터를 버그 없이 한 번에 클리어하는데 성공하면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사실 창세기전 외에도 90년 대 게임 치고 버그에 자유로운 게임이 별로 없지요.

'워크래프트 2'도 튕긴 횟수는 둘째 치고 세이브 파일 통채로 날아간게 확실히 기억하는 것만 두 번이고

'파랜드택틱스 1'도 오필리아로 블리자드만 쓰면 프로그램이 꺼지는 문제가 있어서 봉인하고 플레이하였습니다.

인터넷으로 패치를 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고 게임 진행에 치명적인 버그가 아닐 경우에는 그냥 게임 사양으로 생각하던게 보통이었죠.

 

이게 게임 문제였는지조차 지금 생각하면 애매한게

지금에야 코로나 사태로 성인으로 추앙받지만 윈도우 95 쓰면서 빌 게이츠 욕 안 한 사람이 없었죠.

언제든지 나타나 화면을 파랗게 물들이며 작업 중인 모든 것을 날리는 블루스크린은 당시에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저는 무려 프리셀을 하다가도 블루 스크린이 뜬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 게임이 다운되면 이게 게임을 개떡같이 만든건지 아니면 윈도우가 또 일을 낸 건지 구분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애시당초 컴퓨터란 작업을 하다보면 종종 다운되는 물건이라는 인식이 박혀있어서 '또냐?' 정도의 느낌이었던 것 같네요.

당시 윈도우는 결함 투성이 프로그램이고 진정한 고수는 도스를 쓴다는 사람이 있던게 이해가 갈 정도입니다.

 

거기에 CD-Rom, 당시 CD는 생각만큼 안정적인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컴퓨터가 CD를 잘 읽지 못할 때가 많아서 화면이 멎으면 컴퓨터에 귀를 대고서 읽는 중인지 확인하곤 했습니다.

게임이 다운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부모님의 호출로 나갔다 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갔을 때도 있었죠.

이건 십중팔구 읽는데 몇 번이나 읽는데 실패하다가 간신히 읽어오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아, 그리고 소리가 이상하면 CD 빨리 빼주어야 합니다. 당시 우리집 컴퓨터는 CD 2장이나 날려먹은 전과가 있어요.

뽑기 운도 좀 있어서 항상 똑같은 곳에서 다운이 되던 게임이 있는데 친구에게 같은 CD를 빌려와서 돌리니 정상적으로 넘어가더군요.

 

추가로 환경 구축.

요즘에야 어지간한 프로그램은 구동 환경이 통합되어 있지만

그 때는 인터넷도 안되니 CD로 알아서 DirectX니 Codec이니 설치하여야 하고 몇몇 프로그램은 사운드카드도 스스로 설정해야했거든요.

근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안 생길 수가 없습니다. 버전 관리가 될 턱이 없으니까요.

 

덕분에 당시 게이머는 근성이 넘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차피 게임 하나 사면 6개월, 1년 동안 붙들고 있던게 당연하던 시기인데 될 때까지 덤벼보는거죠.

그 외에도 공략은 게임 잡지를 사야만 볼 수 있는 유료 컨텐츠이고 사실과 다른 뜬 소문이 넘치던 시기여서

아무 정도 없이 하다가 막히면 처음부터 다시 하는게 게이머의 기본 자세였기에 여러 모로 나약한 자는 버틸 수 없던 시기였죠.

 

PS.

슈퍼패미컴 세이브 파일이 얼마나 자주 날아가는지 알 사람은 압니다.